한국의 안보를 지정학적 측면에서 생각할 때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핵 및 미사일 개
발을 강행하면서 군사적 도발을 지속하는 북한에 대한
안보적 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
국, 러시아 등 강대국 간 전략적 경쟁에 대한 대응이 그것
이다. 전자가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현안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구조적인 현안이다.
통상 국가안보를 논의할 때,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
한 대응이 중심적인 논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후자의 구
조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함께 고려되지 않으
면 국가안보에 만전을 기하기 어렵다. 1592년의 임진왜
란이나 1894년의 청일전쟁, 그리고 1950년의 6·25전쟁 등
한반도 안보를 뒤흔든 사건들은 기본적으로 한반도를 둘
러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 간의 구조적 대
립에서 기인한 바가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3일, 중국의 H-6K 폭격기가 이어도 북서방
에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 이와 거
의 동시에 러시아의 TU-95 폭격기가 독도 상공의 아측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응하
여 우리 공군의 KF-16 및 KF-15K 전투기들이 긴급 발진
해 예외적으로 360발의 경고사격까지 실시하는 상황에까
지 이르렀다. 이같은 사태의 발생은 현재 한반도를 둘러
싸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구조적으로 우리의 핵심적인 국가이익에 잠재적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어떠한 전략 하에서 군
사력을 증강하고, 운용하고 있기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
하였는가. 그리고 이러한 군사활동이 한반도의 안보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
해야 하는가를 점검해 봐야겠다.
中·러의 동북아 방면 세력 팽창
개혁개방 정책의 선택 이후 급속도로 고도경제성장
을 달성한 중국은 2010년도를 기점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력을 갖게 되면서 점차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외정책
을 전개하고 있다. 2017년도 기준 2000억 달러를 상회하
는 국방예산을 바탕으로, 기존 230만 명에 달하는 병력
은 200만 명의 규모로 축소하면서, 그 대신 항모 2척을 건
조하고, DF-21 및 DF-26 등 중장거리 미사일과 H-6K 전
략폭격기 등 원거리 투사능력을 증강하고, 러시아로부터
S-300 미사일 방어체제를 도입하는 등 첨단전력을 강화
하고 있다.
원거리 투사능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소위 반접근 지역거부(A2AD: Anti Access Area Denial) 전략의 개념 하에 기
존 아태지역에서 패권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의 해
공군 전력이 타이완 해협이나 남중국 해협 방면에 접근
하는 가능성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남중국해의 파라셀
제도와 스프라틀리 제도 등에 대해 자신의 영유권을 주
장하면서, 이들 도서에 군항이나 전략폭격기의 발진기지
를 건설하고, 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소위 ‘남중국
해 도서들의 군사화’를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 대상이기도 한 센
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 제도를 자신의 영유권
으로 주장하면서, 이 지역에 대해 해공군 전력을 빈번하
게 전개하며 일본과 대립하는 양상을 노정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새롭게 보유한 항모 랴오닝 등을 동원해
서해(西海) 해역은 물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그리고 서
태평양 해역에서까지 항행 및 군사훈련을 활발하게 전
개하고 있다. 이는 대미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의 일환
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은 우리 측이 2013년
12월, 제주도 남방 이어도 상공에 확장한 방공식별구역
(KADIZ)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수차례 군용기를 동원하
여 진입한 바 있기도 하다.
이러한 중국의 군사적 동향에 대해 러시아가 적극 동
조하면서, 양국 간 연합군사훈련의 빈도와 지역적 범위
를 확대하고 있다. 비록 러시아는 냉전시대의 군사력 수
준에서는 멀어져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 하에 미
사일 전력을 증강하고 독자 미사일 방어체제를 건설하고
있으며, 군 구조도 개편해 북극 방면의 영향력을 강화하
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1987년
미국과 체결된 INF(Intermediate Nuclear Force)조약을 무
시하고 이미 중거리 미사일 9M729를 배치했고,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 대상이 되고 있는 남쿠릴 열도의 에토로프
와 쿠나시리 등에도 지대함 미사일을 전진배치했다.
그리고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Tu-95나 Tu-160 전략
폭격기 등을 북유럽의 노르웨이나 미 알래스카, 베링해
및 동해 상공에 빈번하게 출동시키는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018년 9월, 중국군 3200명이 참가한 가운데 냉전시
대 이래 최대 규모로 극동 지역에서 실시한 ‘보스토크 2018’
연합군사훈련, 혹은 러시아 함정 6척이 참가한 가운데 2019
년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 중국 칭다오 해역에서 실시된
연합해군훈련 등에서 보듯이 러시아는 중국과의 양자적
군사협력관계를 보다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美의 대응: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과 INF 탈퇴
이와 같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동향은 2017년 1월
부터 집권하기 시작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요주의 사
항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말에 공표한 국
가안보전략서 및 2018년 2월에 공개한 핵태세보고서 등
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안보이익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중국의
잠재적 안보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2017년 11월부터
인도-태평양 전략을 표명하면서,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
리아 등과 안보협력을 공고히 하면서 태평양에서 인도양
에 이르는 지역 내에서의 중국 팽창을 저지하겠다는 방
침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및 중국의
미사일 전력 증강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2019년 8
월 2일을 기해 기존에 러시아와 체결하였던 중거리 핵전
력 폐기조약(INF)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했다.
이 조약 탈퇴를 기해 미국은 표에서 보듯 1987년 이래
보유하고 있지 않던 사정거리 500 ~ 5500km의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배치하여, 중국과 러시아의 중거
리 미사일 전력 증강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더해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가하는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과의 군사협력을 확대하고 있
다. 또한 유럽에서는 나토국가들과의 연합병력 5만 여명
이 참가한 가운데 2018년 11월에 실시한 트라이던트 정크
처(Trident Juncture) 훈련이나 2019년 7월에 동유럽에서 실
시한 특수전 부대 연합훈련처럼 러시아의 다양한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는 연합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향후 한미일 안보협력의 과제
이같이 아태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전개
되고 있는 미중 간, 그리고 미러 간 군사대립의 양상을 볼
때, 지난 7월, 이어도 및 동해 상공에서 중국 및 러시아의
폭격기들이 우리측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사건들은 결
코 우발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을 바탕
으로 군사력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려는 중국과 이에 전략
적으로 협조하는 러시아의 군사동향이 도발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으로선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장 절박한 안보 현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구조
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동맹국인 미국에 대해 군사적으
로 도전하는 양상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한미동맹을 후방에서 지
원하도록 역할이 부여된 일본과의 안보협력도 소홀히 해
선 안된다.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가 한일관계의 큰
갈등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보다 구
조적인 국가안보이익을 위해 일본을 포함한 한미일 안보
협력체제의 태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미일 안보협력태세를 공고히 하는 것이 중국이
나 러시아를 적대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
는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우리의 국가이익 구현에 중
요한 파트너 국가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미일 안보협력태세를 공고히 하면서도, 동시
에 9월 이후 개최되게 될 동방경제포럼, 동아시아 정상회
의(EAS), APEC 등 다자간 외교무대를 활용하여 중국 및
러시아를 포함한 다자간 경제 및 안보협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중국 및 러시
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 다자 간 안보협력을 상호 충돌
되지 않게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향후 상당 기간 한국
안보정책이 직면해야 할 중요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