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은 묘한 구석이 있다. 본디 영화라는 것이 한두 번 보게 되면 이미 스
토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후반부에 나름의 반전을 가지고 있는
작품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쇼생크 탈출’은 특이하게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볼 때마다 재미가 있고, 흥취가 돋는 영화이다. 심지어 부분 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봐도
푹 빠지게 된다.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쇼생크 탈출’에서 멈춰 그대로 쭉 끝
까지 보게 되는 경험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력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강력한 것인지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스토리
촉망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팀 로빈슨 분)는 아내와 그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강력범들이 수감된 이곳에서 재소자들은 짐승 취급당하고, 혹여 간수 눈에 잘못 보였다가는 ‘개죽음’ 당하
기 십상이다. 처음엔 적응 못하던 앤디는 교도소 내 모든 물건을 구해주는 ‘레드’(모건 프리먼 분)와 친해지며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려 하지만, 악질 재소자에게 걸려 강간까지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간수장의 세금 면제를 도와주며
간수들의 비공식 회계사로 일하게 되고, 마침내는 소장의 검은돈까지 관리해주게 된다. 덕분에 교도소 내 도서관을
열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신참내기 ‘토미’(길 벨로우스 분)로부터 앤디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얻지만, 노튼 소장은
앤디를 독방에 가두고 토미를 무참히 죽여버리는데….
대표적인 영화 사이트 IMDB, ‘TOP 250 평점’ 굳건한 1위
‘쇼생크 탈출’은 1994년 개봉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제작비 2500만 달러를 들여 북미에서 2834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니, 기타 다른 비용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완전 적자 수준이다. 하지만 CNN의 창립자이자 케이블TV
업계의 거물인 테드 터너가 영화의 2차 판권을 사서 자신의 채널에 끝없이 틀어준 덕분에 입소문이 퍼지고, 비디오
와 DVD와 TV 상영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쇼생크 탈출’은 무관의 제왕으로도 유명하다. 아카데미 시상식 7
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하필 그해 경쟁작들이 ‘포레스트 검프’, ‘펄프 픽션’, ‘가을의 전설’,
‘라이온 킹’ 등 쟁쟁한 영화들이었기에 결국 수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또 ‘쇼생크 탈출’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가 무엇이냐라는 논쟁이 붙을 때마다 항상 언
급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영화 사이트인 IMDB TOP 250 평점에서 굳건히 1위 자
리를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이 순위는 깨지기 힘들 듯하다. 참고로 2위가 ‘대부’, 3위가 ‘대
부 2’이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인 대부 시리즈를 마치 자신의 호위무사인양 좌청룡
우백호로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쇼생크 탈출’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탄탄하고 매력적
인 이야기를 꼽을 수 있겠다. 스티븐 킹의 소설집 《사계》 중 봄에 해당되는 《리타 헤
이우드와 쇼생크 탈출》을 원작으 로 이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희
망의 봄’이라는 주제에 걸맞
게 아주 적절하게 각색
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자유와 그것을 향한
굳은 의지는 그 무엇으
로도 꺾을 수 없다”라는 메
시지를 영화적으로 잘 표현했고, 이
러한 주제의식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편적이고 환영받을만한 이야기이다.
배우들의 열연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의 조합은 단독 버디 무비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그 시너지가 엄청나다. 그리고 더욱 인상적
인 부분은 모건 프리먼의 나레이션이다. 리듬을 타듯이 부드럽고 낮게 깔리는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설득력 있게 들리는 효과를 가진다. 아마도 헐리우드 배우 중 최고의 목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쇼생크 탈출’은 레드가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자신의 친구 앤디에 대해 술회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영화이다. 당연
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앤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레드가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캐릭터의 변화상이다. 갈등을 통해 시작과 끝이 다르고, 인물의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레드가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쇼생크 탈출’은 앤디가 불굴의 의지로 자유를 쟁취해 내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앤디의 탈출 성공을 옆에서 지켜본 레
드가 그 결과로 본인도 자유를 학습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탈옥과 관련된 부분이 여타 스릴러 영화와는
다르게 전개되는데, 앤디를 중심으로 그 과정을 긴박하게 보여주지 않고 그가 이미 탈출했다는 결과가 선행되고 나중에
레드가 설명하는 방식도 이러한 부분과 연관된 것이다.
레드가 가석방 된 이후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50년을 넘게 복역하다 가석방을 맞은 쇼생크 도서관의 사서 브룩스는 교
도소 밖의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교도소 안에서의 삶에 길들여진 그에게 자유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생경함이었을 것이다. 만약 레드가 앤디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역시 브룩스와 같은 비극으로 끝났을 것이다. 똑
같은 직업, 똑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레드를 보여주면서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그의 선택은 달랐다. 교도소에서 탈출한 앤
디처럼 레드 역시 탈출을 감행한다. ‘쇼생크 탈출’이 전달하는 용기, 희망, 자유에 대한 메시지가 감동적인 이유도 이러한
이중적인 이야기 구조의 끈끈한 결합 때문일 것이다.
‘쇼생크 탈출’에는 수많은 명장면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아리아가 울
려 퍼지는 장면이다. 회색빛 교도소 위로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순간 형형색색의 빛깔이 덧입혀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름답고 상징적이다. ‘자유’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장면인데, 영화만이 가지는 특성을 이용해서 생생
하게 잘 표현해냈다. 죄수들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자유의 틈새를 잠시 엿보게 된 것인데, 예술이 인간의 존엄성 회복
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존의 명작 영화들을 재개봉하는 일이 잦아졌다. 관객의 ‘니즈’와 수입사의 수익성이 맞아떨어지면
서 유행을 타버린 특이한 현상이다. ‘쇼생크 탈출’도 그 흐름에 동참해 2016년에 재개봉을 했지만, 개인적인 관람으로 이
어지진 못했다. 스크린으로 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TV를 통해 지속적으로 접하게 될 것이 분명
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채널을 돌리다 갑자기 만나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이란…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이, 언제나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다. 끝으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덧붙이자면 원작에서 레드는 원래 백인이었다. 설정상 흑인이 연기하게 되면 어긋나는 부분이 있음에도 모건 프리먼을
캐스팅 한 것인데, 결국 그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사로잡은 ‘쇼생크 탈출’의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