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선거제21대 국회의원선거정치권의 갈등과 대립 양상이 예
사롭지 않다. 올 초 선거법 개정
과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설치법 제
정 문제로 발발된 여야갈등은 지금까
지 봉합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조
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국민의 대
표기관이라는 국회는 오랜 시간 제 기
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정치가 국민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야 간 대화와 협상은 찾아보기 힘
들고 정치는 실종된 듯하다. 국회 무
용론, 무노동 무임금의 목소리가 높아
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국
민들의 갈등과 분열 양상도 더불어 깊
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는 사이 새로운 대표를 선출할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6개월여 앞으
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그 길이 순
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곤
욕스러운 점은 내년 선거를 치르기 위
한 경쟁의 규칙, 선거제도가 정치권의
갈등 속에 어디로 갈지 아직도 그 향
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보
자도, 국민도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
다. 이런 와중에도 각 정당들은 ‘국민’
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제 각각의 목소
리를 높이며 상대를 비난하기 바쁘다.
이미 선거가 시작된 듯하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라는 극명한 결
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늘 대립과 갈등
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선거는
분출된 갈등을 진정시키고 사회적 통
합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는 매우 긍
정적 기능을 가진 정치제도이다. 이러
한 점에서 현재 확대일로에 있는 정
치·사회적 갈등 양상을 생각하면 내
년 선거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내
년 선거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직면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
할 때이다.‘게임의 룰’ 확정이 시급
21대 국회의원선거가 정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실시되기 위해 가장 시급
한 문제는 게임의 룰을 서둘러 확정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안의
원만한 처리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현재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 절차
를 밟고 있는 선거법은 이른바 ‘50%
연동형 권력별 비례대표제’이다.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첨예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
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있
다. 오히려 비례대표를 완전히 없애고
의석수를 270석으로 줄여 지역구만
선출하자는 파격적 제안을 내놓았다.
접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극단
적 대결이다. 도대체 연동형 비례대표
제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심각
한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고 있을까?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을 간단
하게 정리하면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의원정수는 기존과 같이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는 225석으
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75석으로 늘린
다. 둘째, 1인 2표(정당 투표와 지역구
투표)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투표방식
은 기존과 변화가 없으나, 비례대표
당선자 결정은 이전과 같이 지역구와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 투
표결과와 연동하여 계산하되 연동비
율은 50%로 한다. 셋째, 각 정당의 비
례대표는 6개 권역별로 구분하여 배
분·결정하되, 해당 권역 지역구 의석
수가 권역별 배정의석을 초과할 경우
그 권역에는 비례대표를 배분하지 않
는다. 넷째, 지역구 후보자 가운데 아
깝게 패한 후보 일부를 비례대표 후보
자 순위에 올려 당선시킬 수 있는 석
패율 제도를 도입한다.
기존 선거제도와 비교하면 파격적
인 변화다. 이 개정안의 취지와 명분
은 대표성과 비례성 강화이다. 현재
의 선거제도 하에서 정당 득표율과 정
당 의석율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고 있
음을 고려하면 일면 일리 있는 명분이
다. 또한 비례대표 비율이 너무 낮아
각 계층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도 논거의 한 부분이다. 반면 연동
형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는 대통령제와의 부조화를 지적한다.
다당제를 야기할 수 있고 연립내각 구
성이 어려운 현실에서 정국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국
민의 진정한 요구는 국회의원 수를 줄
이는 데 있다고 말한다.
정치에서 갈등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
선거의 규칙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수반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
한 현상이다. 선거제도가 각 정당의
이해득실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다. 정당의 본질이 권력획득에 있기
때문에 모든 정당은 더 많은 권력을
얻는 데 유리한 규칙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선거제도도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어서 각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상충되는 점이 존재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란 원래
갈등하고 다투는 것이며, 그 속성 때문에 정치에서 갈등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따라서 정치에서는 협상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정치상
황에서는 패스트트랙을 거친다 하더
라도 그 결과를 단정할 수 없다. 그러
나 결과가 무엇이던 그 과정의 중요성
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결과도 모
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런 점에
서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은 여야가 게
임의 룰을 위해 대화하고 타협하는 정
치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산고의 협상과 조
정의 과정을 볼 수 있다면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협상의 출발은 양보할 것
먼저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그럼에도 정치권의 모습은 이와는
반대로 향하고 있다. 협상은 일방적
주장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
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극단적 대
립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로의
잘못을 탓하고 있지만 협상의 출발은
양보할 것을 먼저 제시하는 것에서부
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협상 테
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다. 지금이라
도 상호비난의 자세를 버리고 우선 각
자의 양보안을 제시할 것을 권한다.
이제 선거 본연의 이야기를 해보자.
선거는 국민이 동의한 절차에 따라 대
표자를 선출함으로써 통치권력에 대
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
라 다양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적 선택을 통해 사회
갈등을 봉합하고 정치적 질서를 정리
하여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대
표적 기능이다. 이러한 기능의 밑바탕
에는 국민들이 대표들의 정치적 행위
에 대한 책임을 묻는 수직적 책임성이
자리하고 있다. 즉, 선거의 본질은 정
치적 책임성을 묻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도 하는 반면 집권 세력이 지
속적이고 원활하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쉽게 이야기 하면 현재의 권력이 제대
로 대의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유
권자의 의사와 다른 방향으로 업무를
수행한다고 판단할 경우 유권자는 선
거에서 책임을 물어 다른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정치적 행동을 통제한
다. 이와 반대의 경우에는 현재 대표
자의 손을 들어 줄 것이다. 이런 점에
서 선거는 갈등해소의 방향성을 제공
한다. 물론 그 선택의 몫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것이다.
선거의 본질은 정치적
책임성을 묻는 것
그러나 선거가 이러한 본연의 기능
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갈등이
정책방향과 실천대안으로 구체화되
어야 한다. 현재에 대한 판단을 내리
고 내일을 위한 방향을 결정할 수 있
는 구체적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선거는 주권
자의 정치참여와 의사결정 구조로서
사회통합을 이끌어 내는 제도화된 정
치시스템으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
서 선거는 감정적 대결이 아니라 이
성적 갈등표출의 장이 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감정적 대결구도는 유권
자의 감성적 판단을 유인한다. 그러
므로 선거과정에서 상대 정당과 후보
에 대한 비판은 논의의 출발점이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어서
는 안 된다. 선거의 근본은 다른 정당
과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소
속 정당과 후보자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표출하여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내년 선거는 비판과 정책대안 보다는
비난과 감정적 자극이 지배할 가능성
이 커 보인다. 만일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년 선거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더 많은 대립과 갈등을 만
들어 내는 불쏘시개로 작용할 가능성
이 높다. 따라서 사회통합으로의 전
환을 이끄는 선거를 위해 정당과 잠
정적 후보자들은 지금이라도 경제문
제, 사법개혁의 문제, 대북문제 등 모
든 갈등이슈에 대해 왜(Why) 그리고
어떻게(How)에 바탕을 둔 논쟁을 시
작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 선거를
위한 준비과정이다.
‘비난 대 비난’의 대결이 갈등을 해
결해 주지 않음을 자각해야 할 때다.
정치와 선거의 속성상 정쟁을 멈추
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
므로 갈등이슈에 대한 구체적 비전과
대안적 정책을 정쟁의 중심으로 이끌
어 와야 한다. 그것이 선거를 선거답
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자의 네
거티브(Negative) 전략은 일상화되어
있다.
특히 정치적 갈등이 심할 경우 이
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점에서 21대 국회의원선거도 크게 다
르지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이때 필
요한 것이 유권자의 역할이다. 선거
의 꽃은 유권자의 참여와 합리적 선
택이다. 각 정당이 내세우는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제시되는 구체적 대안
이 내 자신의 가치와 얼마나 부합되
는지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
히, 현재와 같이 갈등해소가 절실한
때에는 비록 최소한이라도 나와 가까
운 생각이 무엇인지 결정해 주는 것
이 꼭 필요하다.
이것이 어느 때보다 투표참여가 필
요한 이유이다. 낮은 투표율은 정당
성의 시비를 불러올 수도, 선거 자체
의 신뢰성을 낮출 수도 있다. 심하면
선거결과에 불복하거나 분분한 해석
으로 또 다시 정쟁에 불을 지피는 원
인이 될 수도 있다. 정쟁으로 병들어
가는 대한민국에 통합의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내년 선거에서 유권자의
참여와 합리적 선택이 절실하다.
이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각 정당들
은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할 것이
고, 정당 간 갈등의 양상은 더욱 심해
질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국민들
의 갈등을 부추기고 당리당략을 위한
감성적 접근은 국민을 괴롭히는 일이
다. 선거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
을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자조적 평가
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이대
로라면 국민들은 차악을 선택하는 것
도 곤욕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정당
과 후보자 모두 이성적 논쟁에 동참
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참여의 자세
와 합리적 선택을 위한 진지함을 잃
지 말아야 한다. 2020년 4월 15일 제21
대 국회의원선거가 갈등으로 고통 받
는 우리사회를 사회통합으로 이끄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우리
의 노력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