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다양성과 획일성, 그리고 전체주의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사진〉
은 생명체에 대한 과학적 이해
가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
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가 이해한 생명체의 특성은 다양성
이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다
양성이다. 다양성이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유전자만을 가진
생명체는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
지 못하고 멸종한다.
다양성은 생명체가 지구에 준 위
대한 선물이다. 생명체는 단순한 것
에서 출발하여 복잡하게 진화했다.
생명의 원리인 복잡성과 다양성은
정치적인 문제의 해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양성의 원리는 인류 문명에도
적용된다. 인간도 단순한 존재에서
복잡한 존재로 진화하면서 인류 문
명을 단순하고 획일적인 것에서 다
양한 것을 허용하는 문명으로 발전
시켰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모든
것이 다양해졌다. 인간의 사고와 문
화가 다양성을 용인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의식주의 형태
와 사상과 문화, 정치·사회·경제가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했다. 인간
개성의 다양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정치적 결정은 다양성이 자유의
원천이며,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다양성이 꽃필 수 없고 문명이 발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
어야 한다.
생명과 문명의 근본 원리인 다양
성과 자유를 부정하는 이념이 전체
주의다. 전체주의는 모든 것을 획일
화해 서로 다른 것을 용인하지 않는
다. 전체주의는 자유를 말살하고 다
양성을 억압하기 때문에 창조적인
정신이 숨을 쉴 수 없다. 자유가 없
는 곳에는 창조가 없다. 창조가 없
는 곳에는 발전이 없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의
미와 가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일면 단순
화에 끌린다. 때로 전체주의는 단순
화에 끌리는 인간의 이런 본성과 잘
맞는다. 인간은 단일한 원인과 단일
한 해결책을 선호한다. 복잡한 세상
을 복잡하게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
이다.
이런 관점은 사람들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
진 사람을 적으로 내몬다. 세상을
단순하게 적과 동지로 양분한다. 복
잡한 사건이나 현상을 단순한 원리
로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
다. 독일의 모든 문제가 유대인 때
문이고, 인민공화국의 모든 문제가
미 제국주의 때문이라는 설명은 명
쾌하고 거침이 없다. 대한민국의 모
든 문제가 기득권의 음모 때문이라
거나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설명
도 마찬가지다.
평등이라는 단순하고 호소력 있
는 개념을 믿는 사람은 모든 사회
문제가 불평등에서 유래했다고 믿
는다. 따라서 불평등을 초래하는 모
든 제도에 반대해야 하며, 모든 문
제는 불평등을 해소하면 해결된다
고 굳게 믿는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복지국가는 좋은 국가이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나쁜 국가로 단정한다.
이렇게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관
점을 신봉하는 사람은 시간을 절약
한다. 자신의 관점과 맞지 않는 것
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모든 문
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단순하기 때
문에 세상에 더 배울 것도 더 탐구
해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
니다.
이런 단순화라는 전체주의는 우
리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우
리 교육은 다양성 허용에 인색하다.
학생의 소질과 성정의 다양성을 인
정하지 않는다. 많아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교육은 학생들을 하
나로 몰아간다.
이것은 학교 평준화의 도입과 무
관하지 않다. 평준화의 가장 큰 부
작용은 평준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가 강력하게 모든 학교에 개입하
게 된다는 것이다. 평준화가 시행됨
에 따라 다양한 교육 철학과 방법을
지닌 학교들이 사라졌다. 교육부의
통제 아래 모든 학교가 같은 학교
가 됐다. 학교의 운영 방식이 통일
됐다. 모든 학교는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작동한다. 초·중·고등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학도 그렇다.
평준화가 도입된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하향 평준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해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가 설립됐다. 평준화의 문제
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교육의 공공
성과 평등한 교육의 기회 제공, 고
교 서열화 해소 등을 앞세워 이런
학교를 허물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국가 발전을 위해 우수하
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는 명분에 밀려 목적을 달성하지 못
했다. 하지만 최근 ‘조국 사태’로 대
학입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분
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교육부와 민주당은 2025년부터 특
목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자사고·외
고 등의 일반고 전환은 대선 공약,
국정 과제로 선정됐지만 이 과제를
5년 주기 평가를 통해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난 것이다.
대통령이 “고교서열화와 대학입
시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성을 해치
는 제도 등 교육 분야 개혁을 강력
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입장을 표명
함으로써 특목고 폐지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의 문제
점은 가짜 서류에 있는 것이지 고교
서열화나 대입공정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정부 주도의 공정성은 자
유와 다양성을 훼손한다. 정부 주도
의 공정성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주의적인 획일성을 초
래한다. 공정성의 기준을 정부가 가
지고 모든 조직과 개인에게 강조하
면 도덕 전체주의로 나아간다.
이런 전체주의가 교육을 넘어 사
회 전체로 확산되면 개인의 자유와
제도의 다양성이 숨 쉴 수 있는 공
간은 사라진다. 교육뿐만 아니라 사
회의 여러 제도가 어떤 목표를 추구
할 것인가를 국가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공정하고 그것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국가가 독단적으로 정
할 수는 없다. 모든 개인과 조직은
내면화된 공정성의 척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그것을 독점하
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공정성과 정
의의 사회적 가치는 다양하게 해석
되고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
된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신
의 생각과 맞지 않는 다른 생각이나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
의 생각에 동조하거나 일치하는 사
람과 사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반박하는 사람이나 의견이 다른 사
람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해야 한
다고 본다.
이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
신의 이익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
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단일
가치만을 추구하는 교육 전체주의
에서 벗어나 학생과 학부모에게 각
자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
는,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을 열어주
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