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이 국가 경쟁력이다
공직윤리와 청렴문화 확산이 민주사회의 초석
이동한(전 세계일보 사장 · 현 대한민국 헌정회 편집주간 · 언론학박사)
지난 1월에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20년 국가별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61점이며 180개국 중에 33위였다. CPI 조사는 독일의 비정부 국제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지수로 전문가들이 느끼는 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의 부패 수준에 대한 인식지수다. 점수가 낮을수록 부패가 심하고 점수가 높을수록 청렴하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54점에 51위였던 것에 비하면 좋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선진국 위상에는 맞지 않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2020년 경제협력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에서도 우리나라가 37개 조사대상국 중에서 23위가 됐다. 중위권 국가도 못되는 처지다.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건이 터졌다. 20여 명의 관련자가 발표된 후에 파주와 분당에서 근무하던 처벌을 두려워한 직원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국민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LH 직원이 직장 내 온라인에 “억울하고 부러우면 공부해서 우리 회사로 들어오라”는 글을 올려 비난을 받았다. 분노의 화살이 감독 책임을 못 한 정부를 향하자 여당 대표는 “윗물은 맑은데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많다”는 발언을 해 기가 막힌다는 소리가 나왔다.
공직사회의 부패지수를 붙잡고 있는 공직자의 윤리와 청렴 의식에 중병이 들었다는 사실이 노출된 것이다. 공직사회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정과 부패의 상황은 환경 감시를 하는 언론에 의해 드러난 것도 있지만 권력에 의해 감추어진 것도 있다. 사법기관이 조사하다가 멈추고 있는 것도 있고, 조사해놓고도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도 있다. 윗물이 혼탁하기 때문에 아랫물이 혼탁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긴 꼴이라 하고, 도둑에게 도둑을 잡으라는 격이라고 하지만 고양이를 교체해도 종이 다른 고양이를 구할 수도 없고 도둑질 못 하는 사람 찾기도 어렵다. 공무원의 부패는 사회를 부패시키고 국가 경영을 마비시킨다.
사람의 몸에 질병이 발생하면 그 질병이 이미 앓고 있던 기저질환을 악화시키고 합병증을 유발시키며 회복할 수 없는 환자가 되게 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지속되면 우리 사회는 병이 들고 그대로 방치하면 나라는 망한다. 공직자 윤리와 청렴 의식을 회복하고 부정부패로 중병이 든 공직사회 구제를 위한 처방이 절실하다.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적 노력
부정부패는 개인의 도덕적인 일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폐해와 비용을 유발시킨다. 정치의 민주화와 사법의 정의는 물론 시장 질서를 마비시키고 공공기금을 누수시킨다.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1981년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윤리법은 공직자의 재산등록, 선물 신고 및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공직자의 부정행위 방지, 공무집행의 공정성 확보, 깨끗한 공직사회 구현을 위한 공직자로 국민 전체 봉사자로서의 책임을 다 할 수 있게 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 재산등록 의무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정무직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 4급 이상 공무원, 법관, 대령 이상 장교,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이 해당된다. 재산등록 4급 이상 공무원과 그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이 해당된다. 공직자에 관한 일정한 사항을 심의, 결정하기 위해 국회·대법원·정부에 각각 공직자윤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2001년 ‘공직자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공직자 및 공공기관과 관련된 부패행위를 근절하고 내부 고발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한 법이다. 2003년 ‘공무원 행동강령’이 대통령령으로 제정 공포됐다. 부패방지법에 근거해 최초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종합적이며 구체적인 공무원 윤리 규범이다. 국가의 각급 기관 소속 공무원은 행동강령을 준수해야 한다. 강령의 주요 내용은 ‘공정한 직무수행과 부당 이득의 수수 금지, 건전한 공직 풍토조성’을 위해 지켜야 할 행동 수칙이다.
2005년 ‘투명사회 협약식’을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4개 부문 대표 120명이 모여 거행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총체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 정부와 재계, 정치권, 사회단체 등이 모여서 반부패 협약을 체결했다. 2008년부터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국민권익위원회’를 설치해 반부패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 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충 민원처리와 부패 방지, 행정심판기능을 통합해 국민의 권익과 구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국민의 권리보호를 위한 공공기관의 부패취약분야를 분석해 공공기관의 청렴도를 측정해 왔으며 공익신고자 보호제도 등을 만들어 청렴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5년 제정된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공직자 금품 향응 수수 금지의 사후적 통제 장치다.
2021년에 국회에서 통과된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의 직위와 정보를 이용한 사적 이익 추구의 예방적 통제 장치로 볼 수 있다. 공무원은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받아도 안 되고 해서도 안 된다. 뇌물을 받거나 주면 처벌을 받는다.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투기를 하면 감옥을 간다. 이 같은 제도적 장치가 공직사회의 청렴성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령을 무색하게 하는 부정부패의 악습은 공직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직 윤리와 청렴의 가치
공무원이 되면 나라와 국민에 대한 의무를 위해 성실의 의무와 청렴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공직자의 윤리와 청렴에 대한 국민적인 잣대는 훨씬 높고 엄격해지고 있다. 원래 윤리(倫理)라는 말은 예기의 악기편(樂記編)에 나온다. 인간이 한 동아리로 서로 의존하며 지켜야 할 질서를 말한다. 서양에서 윤리를 의미하는 에틱스(ethics)는 ‘습속’ ‘성격’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토스(ethos)에서 유래했다.
윤리의 윤(倫)은 ‘무리’, ‘또래’, ‘질서’ 등의 의미가 있다. 리(理)는 ‘이치’, ‘이법’, ‘도리’ 등의 뜻이 있다. 윤리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데 지켜야할 이치 또는 도리를 의미한다. 물리가 사물의 이치라면 윤리는 인간관계의 이법이라 말할 수 있다. 공직자는 공무를 수행하면서 윤리적 규범을 지켜야 한다. 공직자 윤리의 으뜸이 되는 덕목이 공정과 청렴이다. 이 공정과 청렴을 붕괴시키는 것이 부정부패다. 공정은 바른 것이요 청렴은 깨끗한 것이다.
청렴의 의미는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인 다산 정약용은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이며 모든 선의 근원이요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불삼거(四不三拒)를 관료들의 청렴도의 기준으로 삼았다. 사불은 재임 기간에는 부업을 가지지 않으며, 땅을 사지 않고. 집을 넓히지 않으며, 지방 명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삼거는 상전이나 세도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며, 부탁을 들어주어도 답례를 거절하고, 경조사 때 부조를 받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공무원법 제61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3조에도 청렴의 의무를 공직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명시하고 있다. 부패방지법이나 부정청탁금지법도 청렴 의무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법이다.
청렴한 관리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청백리가 건강한 사회의 기본이다. 공적인 물건을 더 아껴 쓰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고 공중도덕을 솔선해 지키고 불우한 이웃을 앞장서 도와주는 선행을 공직자가 먼저 실천하면 시민들도 따라 할 것이다. 공직사회부터 청렴의 가치를 생명시하고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려고 노력하면 각계각층에 청백리 청렴 정신이 파급되어 공정한 사회가 된다. 노력해도 손해 보는 세상이 아닌 노력한 만큼 대가를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사회에 살 수 있다. 그래서 청렴과 공정은 사회 복지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윤리와 청렴 회복의 길
공직자가 청렴하지 못하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발부터 공직자의 윤리와 청렴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고 수백 명의 공직자가 법정에 섰다. 그러나 구악을 청산하면서 신악이 생겨났다. 자신이 발탁한 조국 장관을 경질했고 대선을 도왔던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으로 구속됐다. 문 대통령은 읍참마속의 고통을 참아야 했다. 여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가 성폭력으로,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으로 수감중이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추행한 사건이 터지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래서 시중에는 내로남불이니 아시타비니 하는 말이 떠돌며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적폐를 쌓고 있다고 비판을 하고 있다.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는 말은 5.16혁명 공약에도 나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회정화 운동을 하고, 바르게살기운동을 한다면서 부정부패 청산을 외쳤다. 수많은 기관과 단체가 사회운동을 전개하고 수없이 법을 만들어 처벌을 했는데도 자고 나면 터져 나오는 것이 부정부패다. 잡초처럼 뽑아도 돋아나고, 하루가 멀게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공직사회의 부패가 만연하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 하락하고 국민이 정부 정책을 거부하고 외국의 투자자도 떠나고 외교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청렴이 국가 경쟁력이다.
부패를 청산하고 청렴을 회복하는 것은 원래 불가능한 일인가? 그래도 제도적 규제와 사회운동, 교육 강화를 계속해야 하는가? 오랜 세월 조상들도 해결하지 못하고 물려준 골치 아픈 역사적인 유산의 청산을 위한 방안의 핵심을 찾아야 한다.
첫째, 위정자들이 부패 방지와 청렴 회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부패 청산을 정치적 구호나 선거용 공약으로 내거는 정도를 넘어서 정치보복이나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이용하면 부패 청산의 악순환은 반복된다. 부패와 청렴의 가치가 정권의 수단으로 전락되면서 부패는 계속 발생하고 청렴은 말살되고 만다. 과거 집권자들이 혁명과 개혁의 대의명분으로 부패 청산과 청렴 회복을 내걸고 민주와 인권을 무참히 유린하던 사례를 많이 보았다. 산전수전을 겪은 국민은 이제 위정자가 말을 하면 듣지 않고 말을 하는 얼굴과 발을 쳐다본다. 국민에게 부패 청산과 청렴 회복에 관한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둘째는 공직자의 양심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다. 신기독야(愼其獨也)는 혼자 있을 때 삼가한다는 뜻이다. 무자기야(毋自欺也)는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공직자가 어떤 외부로부터의 유혹과 압력이 가해지더라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 양심을 기만하지 않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돼야한다. 공직 현장의 자아 회복을 위해 철저한 수행을 하고 양심 방호를 위한 철통 무장을 해야 한다. 그런 공직자의 자기 확립을 할 수 있도록 풍토를 조성하고 공직 윤리와 청렴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공직 조직의 위와 아래와 중간에서 자율적인 동력으로 이 같은 변화가 시작된다면 성공이 가능하다. 공직자의 양심 속에서부터 부패를 몰아내고 청렴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