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바라보는 종전선언과 남북관계의 모순
종전의 동상이몽과 복잡다단한 각국의 이해관계
이수원(안양대 강사, 통일사회정책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은 UN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김여정 당 부부장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대답하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 정상회담을 함께 언급하면서 ‘종전선언’은 남북관계의 중요 관심사로 등장했다.
사실 종전선언은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과 2018년 ‘판문점선언’에도 명시되어 있고 문 대통령이 UN에서 2020년 9월에도 언급했었던 것으로 새로운 제안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중단되어 있는 북한과의 대화에 새로운 동력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제안이다. 그런데 종전선언이 기대만큼 남북대화의 동력원으로 작용하려면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하고 그 이해를 맞추어 가려면 당연히 북한의 생각과 그 모순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北, 적대시 정책 철회가 종전의 선결 조건
북한의 종전선언에 대한 생각은 김여정이 9월 24일과 25일에 발표한 담화와 김정은이 9월 29일에 최고인민회의에서 한 연설에 잘 나와 있다. 우선 김여정은 9월 24일에 “종전이 선언되자면 쌍방 간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지독한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 기준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편견적인 시각, 이중 기준 등에 대해 “우리(북한)의 자위권 차원의 행동은 모두 위협적인 ‘도발’로 매도되고 자기들(한국과 미국)의 군비증강 활동은 ‘대북 억제력 확보’로 미화하는 미국, 남조선식 대조선 이중 기준은 비논리적이고 유치한 주장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이고 도전”이라고 했다. 즉, 북한의 주장은 한국과 미국이 자신들을 대상으로 한 전력증강과 연합훈련 등은 자유롭게 하면서 북한의 자위를 위한 전력증강 노력은 비난하며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이고 자신들에 대한 이와 같은 차별과 비난이 없어야 종전선언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생각은 김정은의 연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김정은은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계속 밝히고 있는 불변한 요구”라고 말하였다. 자신들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고 이것부터 사전에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종전선언은 “전쟁을 종료시켜 상호 적대관계를 해소하고자 하는 교전 당사국 간 공동의 의사 표명”으로 당사국 간의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그런데 북한이 신뢰 회복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한 그들을 향한 이중잣대, 적대시 정책의 가장 큰 원인인 핵 문제에 대해 김여정과 김정은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이 종전선언과 핵 문제를 분리하여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입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8년 10월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종전은 결코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며 우리의 비핵화 조치와 바꾸어 먹을 수 있는 흥정물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언급했었다. 종전선언과 핵 문제를 동일선상에 높고 논의할 의사가 없음을 이번에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종전선언과 핵 문제를 완전히 분리시키기는 어렵다. 북한의 핵 개발이 알려진 후 한반도의 안정과 신뢰 구축에 방해가 되는 문제들은 대부분 핵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이것을 시도하는 이유는 협상 안건을 늘리면 늘어나는 안건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와 종전선언의 모순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북한은 자신들 체제에 직접적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한미동맹의 연합훈련을 포함한 군사 활동과 한국의 전력증강을 억제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된다. 이는 절대적 열세에 있는 재래식 전력의 차이를 줄여 북한이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체제 위협의 강도를 줄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120만이나 되는 정규군을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없는 북한의 경제 사정상 매우 실제적인 문제이다. 거기에 과도하게 비대해져 있는 북한군의 운용에도 융통성을 발휘해 불필요하거나 운용하기 힘겨운 인력과 자원을 다른 곳으로 돌려 체제 안정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이 원하는 대로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별도로 다루어 해결하게 되면 이를 통해서 제재를 해제시킬 수 있고 이어서 국제사회로부터 각종 지원과 교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의 외교활동과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즉, 핵 문제해결은 북한의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 해소에 필수 요소인 것이다.
위와 같은 북한의 의도들은 여러 모순을 품고 있다. 이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면 북한은 스스로 대화에 나오는 길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우선 북한은 자신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자신들과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내용의 입장을 발표하면 국제 외교무대는 물론 일상에서도 상식적이지 못한 험한 말들을 상대 국가원수들에게 쏟아내고 있다. 거기에 한국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험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이는 분명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은 아니며 스스로 자신들을 향한 상대의 거부감을 키우는 행위이다.
또한 북한은 자신들의 군사 활동은 자위적 활동이라고 주장하며 한국과 미국의 군사 활동에 대해선 ‘도를 넘는 우려스러운 무력 증강’, ‘한반도 주변의 안정과 균형을 파괴시키고 남북 사이에 더욱 복잡한 충돌위험들을 야기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각종 신무기들을 지속적으로 개발 및 발사하고 있는데 종전선언이 제안된 9월 21일을 전후해서도 극초음속 미사일, SLBM,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 등을 실험하였다.
솔직히 최근 한국군이 추진하고 있는 SLBM 개발, 탄두 중량 7〜8t급 대위력 탄도미사일 개발, 탄도탄 요격 미사일 도입 및 개발, 경항공모함과 3000t급 잠수함 건조, F-35A/B 전투기 도입 등의 전력 증강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만 고려하면 지나친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미군의 사드 배치, 전략자산 운용 등도 북한의 재래식 전력을 대상으로 하기엔 지나치게 강력한 것이긴 하다. 또한 그 능력만큼 비싼 비용과 운용을 위한 정치적 부담도 감수해야 하는 무기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북한의 핵전력을 대비하기 위한 것들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에 맞서려면 비싸고 부담되더라도 들여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애초에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그것을 운반할 탄도미사일과 잠수함 등을 만들지 않았다면 들여올 이유가 없는 것들이다.
즉,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전력증강 활동의 원인인 자신들의 핵 개발은 ‘자위적 활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응한 한국의 ‘자위권 차원의 최소한의 행동’을 ‘도를 넘는 우려스러운 무력 증강’으로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편견적인 시각을 통해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韓·美·北의 동상이몽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은 핵 문제와 종전선언을 분리하여 접근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대화 상대인 한국과 미국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화제로 오르자 한국과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만큼 핵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의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반대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다. 이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비판을 감수하며 종전선언을 추진해야 하는 한국 정부와 조건 없는 대화를 원하는 미국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 될 것이다.
또한 종전선언과 핵 문제를 과연 분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도 구해야 한다. 현재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충돌지점은 핵 문제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양측 모두 군사력을 구축하고 있고 치열한 외교적 수 싸움을 벌이며 툭하면 으르렁거리는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다. 핵 때문에 신뢰를 쌓고 싶어도 쌓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신뢰가 바탕이 되지 못하면 추진하기 어려운 종전선언에서 신뢰 구축의 핵심인 핵 문제를 제
외하고 별도로 다룬다는 것은 붕어빵을 먹을 때 빵과 팥소를 따로 먹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생각과 그 모순점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내용보다 더 큰 문제는 대화에 조건을 붙였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이다. 그런데 신뢰 구축을 위해 대화를 하자는데 신뢰가 없다며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면 더욱이 그것이 일방적인 것이라면 문제해결은 요원해지기만 할 것이다.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건 때문에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조건을 붙이지 말고 우선 대화에 나와야 할 것이다. 선결 조건으로 내건 것들이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것이라면 그 선결 조건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부터 시작하면 된다.
사전에 해결되길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대화로 해결하며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전선언과 그 이상까지 대화를 발전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한편 한국 정부는 서두르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서로 생각과 이익이 다른 4개국(한국, 미국, 북한, 중국)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사전에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주한 미군의 지위,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 문제 등을 미국과 먼저 협의해야 하고 북한이 제시한 선결 조건에 대해서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핵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할 것인지 함께 논의할 것인지 등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임기 내 마무리를 하기 위해 지나치게 서두른다면 국내외적으로 논란만 일으킬 뿐이다. 그리고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선언이 나오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정부는 북한이 대화에 나서게 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는 욕심을 버린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