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으로 남북관계도 복원 가능할까
유연외교·초당적 평화 공공외교 전개해야
전현준(국민대 겸임교수)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전략
문재인 대통령이 9월 UN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재차 제의한 이후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논의는 종전선언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 문제이다. 종전선언을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하는 관련 당사국들은 북한과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남한의 ‘이중잣대 폐기’ 및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주장하고 있다. 남한과 중국은 원칙적으로 전제조건없는 종전선언을 내놓고 있다.
종전선언 문제의 핵심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인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양국은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쥐고 한반도 안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종전선언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의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환영한다”라고 말하지만 “한미 간 조율”을 강조하면서 ‘속도조절’을 주문하고 있다. 북한이 미북 대화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지 않는 한 어떤 정치적·경제적 당근도 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북한 역시 ‘전제조건’을 내세우면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북한은 9월 24일 리태성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약 7시간 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외무성 입장과는 달리 “남측이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나쁘지 않다”라면서 ‘조건부’ 수용 의사를 내놓았다. 김 부부장은 9월 25일 저녁보다 구체적인 조건과 제안을 했는데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 종전선언은 물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까지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여정의 입장을 재확인하였고 이것은 북한 대남 정책의 기본 입장으로 굳어졌다.
종전선언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문 대통령이 9월 15일 SLBM 시험발사를 ‘억지력 확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도발’이고 남한의 미사일 발사는 ‘자위적 차원’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중잣대’라고 비난하였다. 김여정은 남한의 이중기준은 “절대로 넘어가 줄 수 없다”라고 단호히 말하였다.
북한은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활용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9월 28일 극초음속 미사일발사와 같은 미사일 개발 합법화 및 정당성 확보, 남한의 대북 이중적 태도 제거 등 ‘1타 3피’식 해결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김여정도 종전선언이 ‘정치적’ 의미밖에 없기 때문에 종전선언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핵문제를 비롯한 각종 군사적 논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종전선언 이행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김여정이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종전선언을 매개로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은 북한은 ‘종전선언 반대자’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종전선언이 무산될 경우 모든 책임을 남한과 미국에게 전가하는 한편 만일 남한이나 미국이 북한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큰 이득을 얻는 ‘헤징(hedging)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의 의미와 역사
헤징 전략 하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북남 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단 10월 초부터 통신연락선들을 다시 복원하라”고 교시했고 10월 4일 남북 통신연락선,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함정 간 국제상선 공통망, 핫라인 등이 복원되었다. 북한이 8월 10일 한미연합훈련을 빙자하여 통신선을 중단한 후 55일 만이었다. 9월 25일 김여정이 언급한 공동연락사무소 개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조그마한 것’이지만 남북 간 소통의 장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북 통신연락선은 남북 간 평화상태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잣대’이다. 남북 간에 아무리 긴장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통신선이 살아 있으면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지만 끊어진다면 매우 불안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남한에게 불만이 있어서 남북 간 긴장을 높일 필요가 있을 때 통신선을 단절하곤 하였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남북 직통전화는 1971년 9월 20일 남북적십자회담의 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있는 남한 자유의 집과 북한 판문각에 1971년 9월 22일 2개 회선이 개통되었다. 1972년 4월에는 서울과 평양 사이에 직통전화 1개 회선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1976년 8월 30일 이후 북한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통신선은 중단되었다. 1980년 2월 총리회담 실무대표 접촉을 계기로 다시 개통되었으나, 같은 해 9월 24일 북측에 의하여 또 중단되었고, 1984년 9월 29일 양측 적십자사 간 수재 물자 인도·인수를 계기로 다시 개통되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통신선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었다. 북한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잠수정 강릉 침투사건 발생 후 통신선을 단절시켰다가 2007년 7월 31일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8월 14일 재개시켰다. 북한은 2008년 11월 22일 제63차 유엔총회 때 남한의 대북 인권 결의안 공동제안을 이유로 통신선을 단절시켰고, 2009년 ‘김대중 대통령 특사조의방문단’ 서울 방문(8월 21일∼23일) 및 남북적십자회담(8월 26일∼28일)을 계기로 8월 25일 재개시켰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남한의 ‘5.24 조치’ 2일 후인 5월 26일 북한은 남북 간 군 상황실 간 직통전화 이외에는 모든 통신회선을 중지시켰다. 이후 2010년 10월 18일부터 남북 민항 관제 통신망이 재개되었고 2011년 1월 12일부터 남북 간 연락사무소 직통전화도 다시 연결되었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대남 위협을 고조시키면서 통신 연계를 모두 끊었다. 북한은 7월 남북대화를 통해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 해결 실마리가 풀리자 통신선을 복구하였다.
2016년 2월 북한은 남한의 개성공단 운영 중단에 반발하며 통신선을 차단하였다가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천명 이후 통신선을 복원하였고 이어서 남북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등 대남·대미관계의 새 국면이 열렸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북한은 2020년 6월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통신 연락선을 끊었고 6월 12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413일간’ 단절됐던 통신 연락선은 2021년 7월 27일 북한의 일방적인 복원으로 정상화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8월 10일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통신 연락선을 단절시켰고 김정은의 ‘강력적 교시’에 의해 10월 4일 복원되었다.
남북관계 복원 전망과 우리의 역할
남북 통신선의 개설과 단절의 역사에서 보듯이 통신 연락선은 남한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북한의 일방적인 대남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금번 통신선 복원이 2021년 하반기 및 2021년 전반기의 남북관계를 ‘화창한 봄날’로 이끌어 준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봄날이 올 수도 있고 한파가 몰려올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은 통신선 복원 이후 다양한 매체와 필자들을 동원하여 남한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솔직히 우리가 북한이 요구하는 이중잣대 및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단독으로 할 수는 없다. 미국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풀리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모습이 선행되고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가 이어져서 북미관계가 풀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우리는 양국의 입장변화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우리가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의 중재자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은 각 주체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는 국가이익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각 주체들은 종전선언이 자신들에게 어떤 손익이 발생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주도로 종전선언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한국의 ‘위신’이 더욱 높아지는 국가이익을 얻을 수 있다.
국익을 위해 우리는 유연외교와 평화 공공외교를 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중견국인 우리는 대미 및 대북 외교는 물론 대중, 대일, 대러시아 외교를 강화하여야 한다. 비록 미국과 중국 간 치열한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양국 모두로 부터의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 및 중국에 대한 초당적 평화 공공외교를 펼쳐야 한다. 특히 미국과는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스냅백(제재 완화 후 약속 위반 시 제재 복원)’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중요 당사자인 북한과는 김정은의 ‘통신 연락선 재복원’을 획득한 여세를 몰아 특사교환을 성사시키고 특사교환 이후 남북정상(화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 대북 특사를 통해 우리는 북한이 원하는 ‘공정성과 상호존중’에 대해 남한의 특수한 정치적 지형, 지속적인 대북 포용 노력, 한미동맹의 특수성 등을 설명하고 대남 불신의 원인인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막후 상황을 진솔하게 설명하여 북한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초당외교를 위해서는 보수진영과 야당에 대한 설득이 필수인데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와 관계없이 야당 대표들과 정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대화에서 제시되어야 할 논리는 한반도 안보와 평화는 보수와 진보 간, 여야 간 문제가 아닌 우리 민족의 보편적 문제라는 점,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평화유지 비용(무기 도입과 남북협력 병행)은 불가피하다는 점, 국가이익 및 민족이익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은 불가피하다는 점, 야당도 집권한다면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해 북한과 ‘박정희식’의 ‘대화있는 경쟁’ 정책을 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