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미국과 러시아 간 패권 전쟁의 최전선
소련 부활이라는 푸틴의 야심 vs. 러시아 포위 강화라는 바이든의 의지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붕괴한 소련과 푸틴의 야심
“소련의 붕괴는 러시아 국민들 대부분에게 비극이었다. 국가는 40%의 영토를 잃었고, 비슷한 규모의 산업생산력과 국민을 상실했다. 소련 붕괴와 함께 250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하루아침에 국경 너머, 독립한 옛 소련 공화국들에 남겨지게 됐다. 그들은 (러시아로)돌아올 수도, 자신들의 친인척들과 재결합할 수도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영방송 ‘로시야 1’의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러시아, 새로운 역사’(지난해 12월 12일 방송)에 출연해 옛 소련 붕괴에 대해 회고한 대목이다. 소비에트 연방(줄여서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공식 해체됐다. 소련을 구성했던 15개 공화국들은 모두 독립했고, 이 중에서 러시아가 소련을 승계했다. 푸틴 대통령의 말대로 소련 붕괴로 러시아의 영토는 17세기 예카테리나 여제 이전으로 줄어들었다.
소련 시절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소속이었던 푸틴 대통령은 KGB가 해체되자 고향인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에서 아나톨리 소브차크 시장의 대외 업무 총괄 보좌관으로 일했다. 푸틴 대통령은 다큐멘터리에서 월급이 적어 불법으로 택시 운전을 했다고 고백했다. 푸틴 대통령은 “나는 달빛을 보며 돈을 더 벌기 위해 개인 자동차로 택시 운전을 했다”며 “솔직히 말해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쾌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이 다큐멘터리에서 강조한 두 가지 점은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조지아 등으로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과 자신이 택시 운전을 할 만큼 러시아의 국력이 약화됐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이 다큐멘터리에서 강조한 것처럼 우크라이나 침공은 무력을 통해서라도 소련의 부활은 아니더라도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푸틴,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푸틴 대통령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의 차르 체제를 무너뜨리고 1922년 12월 30일 소련을 건국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러시아는 머리를 잃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제국’이 되는데 필요한 핵심 국가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제정 러시아는 물론 소련 시절에도 식량 창고 역할을 해왔다. 우크라이나의 국토는 대부분 ‘검은 흙’(黑土)을 뜻하는 체르노젬(chernozem)으로 덮여 있다. 흑토는 비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영양분이 많아 씨앗만 뿌리면 밀, 옥수수, 보리 등 각종 곡물이 잘 자라는 땅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과거부터 유럽의 ‘빵 바구니’(bread basket of Europe)라는 별명으로 불려왔다.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는 전 세계의 28%나 되는데, 북미의 프레이리(Prairie)와 남미의 팜파스(Pampas)와 함께 세계 3대 곡창으로 유명하다. 우크라이나는 2020년 밀 2400만t을 수확해 이 중 1800만t을 수출하는 등 세계 5위 밀 수출국이며, 옥수수도 전 세계 수출량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밀 생산량 1위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합병할 경우 국제 곡물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자원 부국이다, 철광석(세계 1위 매장량), 석탄(세계 6위)을 비롯해 망간, 티타늄, 니켈, 흑연 등 멘델레프의 원소 주기표에 나오는 자원들이 대거 매장돼있다. 이 때문에 소련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철강 등 군수 및 중공업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과학기술이 발전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해왔기 때문이다. 소련 시절 군사력의 절반이 우크라이나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들이 군수산업 발전에 상당히 기여해왔다. 철강, 항공, 우주, 조선, 원자력 발전 분야에서의 첨단 기술력은 세계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강대국이 갖춰야 하는 인구, 영토, 자원이라는 3가지 요소를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1년 독립 당시 인구는 5200만 명으로 유럽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았다. 국토 면적(60만3700㎢)은 한반도의 3배에 달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지정학적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는 전략요충지라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동과 서(러시아와 유럽), 남과 북(발트해와 흑해)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의 교차로에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과거부터 유라시아 패권전쟁의 주요 무대였다. 유럽인에게는 동방진출을 위한 길목이었고, 아시아 유목민에겐 유럽 침략의 통로였으며, 부동항이 없는 러시아에겐 흑해와 지중해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였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몽골족 등 이민족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권에 두려고 패권 다툼을 벌여
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시켜 서방의 일원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반면 러시아는 결사적으로 이를 반대해왔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EU에 가입할 경우 말 그대로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상황에 빠지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과의 완충지대 격인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안보에 심각하게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앞마당인 우크라이나에 탄도미사일을 배치하면 모스크바를 타격하는 데 불과 4~5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러시아로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옛 소련권 국가들의 안보 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강화하는 전략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CSTO 회원국들은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다. 러시아는 CSTO에 우크라이나를 가입시켜 나토에 대항할 수 있는 ‘제2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만들려는 의도를 보여 왔다.
美, 나토와 EU에 우크라이나 참여유인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는 ‘제국 부활’이라는 러시아의 야심을 제어할 수 있는 지정학적 급소이다. 미국의 유명한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소련 부활은 우크라이나가 그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으로선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 서방에 편입시킬 경우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미국 역대 대통령과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을 제공하고 경제지원을 통해 나토와 EU 가입을 유도해왔다.
지경학적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가다. 러시아의 국부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수송해왔다. 실제로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80%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됐었다. 물론 러시아에서 발트해 해저를 통해 독일로 직접 가는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1과 2’라는 파이프라인이 완공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러시아는 과거 두 차례나 우크라이나 경유 파이프라인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유럽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뜨리기도 했다. 반면 천연가스가 필요한 유럽 각국의 입장에서 볼 때 러시아의 ‘횡포’는 에너지 안보 차원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유럽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EU에 가입하면 러시아의 유럽 에너지 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러의 패권경쟁으로 전장터 된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경제력을 갖춘 강대국이 되려면 우크라이나를 자국 세력권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4000억 달러 규모로,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러시아가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되려면 농업대국이자 자원 부국인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여야 한다. 러시아는 그동안 카자흐스탄, 벨라루시,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 5개국을 한데 묶어 EU에 대응하는 옛 소련권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구축하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EAEU는 그동안 상품, 자본, 노동, 서비스 등의 자유로운 이동 등 하나의 경제 동맹체 결성을 목표로 내세워왔다. 우크라이나가 EAEU에 합류할 경우, 러시아는 옛 소련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할 경우 러시아의 구상은 좌초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는 물론 나토의 결속을 강화하는 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유럽은 그동안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실제로 EU는 프랑스의 주도로 2025년까지 독자적인 유럽군을 창설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EU의 이런 전략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 분명하다. EU로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미국과의 안보 강화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고, 나토의 전력 증강에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나토는 회원국들의 결속을 강화하고 폴란드·루마니아·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회원국에 대규모 병력을 상주 배치할 것이 분명하다.
더욱 중요한 점은 군사적 중립 노선을 보여 왔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서쪽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의 경우,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이 “핀란드의 전략과 선택의 자유는 군사적 동맹과 나토 가입 신청 가능성도 포함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핀란드는 그동안 나토의 협력국으로서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정보를 공유해왔지만 나토에 가입하지 않아 왔다. 핀란드는 과거 1939~40년 소련과의 ‘겨울전쟁’에서 패배하는 등 러시아의 침략 위협을 두려워해 왔다. 스웨덴도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옛 소련권 공화국이었던 발트 3국은 아예 미국에 대규모 병력 파견과 상주 배치를 요청하고 있다. 중유럽의 전략요충지인 폴란드와 동유럽 국가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도 미국과 안보협력 확대에 적극 나설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나토의 확대와 강화를 통해 러시아 포위 전략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아무튼 우크라이나는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패권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