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Ⅱ: 대한민국 국방력 현주소 진단
건군 74주년, 아련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의 추억
K-무기로 무장한 大韓 강군의 행진을 보고 싶다
이정훈(동아일보 기자, 정치학 박사)
2013년 국군의 날 필자는 모 TV 방송에 출연했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하는 우리 군을 보며 민군 협력을 하는 단체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였다. 그런데 방송사에 가보니 시가행진을 하는 부대와 무기를, 화면에 잡히는 대로 설명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해오지 않았는데, 생방송 시간이 임박했다는 압박 때문에 ‘될 대로 돼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리고 부대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병사 어깨의 마크를 보고 무슨 작전을 하는 무슨 부대라고 설명하고, 무기가 나타나면 떠오르는 대로 지껄였다. 한 시간 남짓 그렇게 떠든 것 같은데, 해설이 아주 진지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만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단 한 번도 서울에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하지 못했다. 국군의 날 서울 시가행진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전두환 정부 때 3년에 한 번으로 줄였다가, 김영삼 정부 시절 통수권자인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 5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또 줄였다. 우리 군은 1948년 창군했으니, 매 3년과 8년에 시가행진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은 건군 60주년이었다. 그런데 그해 초 국보 1호인 숭례문 화재로 시가행진이 취소됐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열렸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건군 70주년 시가행진을 계획했는데 무산됐다. 그해 판문점과 평양 등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탓인지 문 정부는 폭염을 이유로 취소시켜버렸다. 대신 전쟁기념관에서 가수 싸이(PSY) 등이 참여한 축하공연을 펼쳤다. 문 정부는 국군의 날 행사를 볼거리로 만들었다. 계룡대에서 소규모로 열리던 국군의 날 행사를 2021년엔 포항에서 해군과 해병대의 초수평선 상륙작전 시연으로 대체했다. 북한은 걸핏하면 열병식을 하는데, 우리의 시가행진은 아련한 추억이 돼 버렸다.
‘사자방’이 만든 역설, 8대 무기 수출국
최근 K-방산 수출과 관련해 좋은 소식이 많았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는 역대 최고인 70억 달러(약 9조2000억 원)어치의 방산물자를 수출했다. 무기 수출액이 수입액(약 50억 달러)을 넘기는 기록도 처음으로 세웠다. 무기 수출입 흑자국 대열에 선 것이다. 2017년부터 2021년 사이 5년간 K-방산의 수출액 증가율은 10대 무기 수출국 가운데 가장 높은 176.8%였다. 덕분에 세계 무기 시장의 2.8%를 차지하며 우리는 세계 8위의 무기 수출국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기적은 ‘사자방’의 역설에서 비롯된 것 같다. 7~8 여년 전 이른바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사업)’은 부정과 부실 덩어리라는 여론의 질타를 맞고 사정당국의 수사대상이 됐었다. 때문에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은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을 한화로 넘기며 방산에서 철수했다. 국내에서 욕먹는 방산이 살 수 있는 길은 수출뿐이었다. 그런데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K-방산을 어느 나라가 사줄 것인가? 정답은 ‘가성비’에 있었다. 운도 따라야 한다.
둘이 묘하게 조합을 이루면서 K-방산 전성시대가 열렸다.
냉전 종식 후 세계적인 평화가 지속되자 주요 국가들은 국방비를 줄였다. 자국 국방비에 기대 사는 그 나라의 무기회사들은 요구가 없는 무기의 생산라인을 철거했다. 전차나 장갑차 포 같은 보편적인 무기는 설계수명을 넘겨 사용해도 되니, 그 생산시설부터 줄인 것. 그러한 때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세운 중국이 팽창을 거듭하자 호주 등 주변 국가들이 무장 강화에 나섰다. 중국의 팽창을 막는 데는 스텔스기 같은 첨단무기보다는 보편적인 장비가 더 많이 요구된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보편적인 무기 부족 현상이 심화됐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일원으로 있다가 독립했기에 소련제(러시아제) 무기로만 무장해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동맹국으로 있다가 냉전 종식 후 NATO 회원국이 됐기에 이들이 보유한 무기도 소련제가 다수이다. 동맹을 잘 유지하려면 ‘무기 표준’을 해야 한다. 생산은 누가 하든 부품과 탄약 등은 같이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NATO를 이끌게 된 미국은 ‘NATO 표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무기-장비의 호환’을 보장했다. 미국산 탄환과 부속품을 영국과 프랑스산 대포와 전차에서도 발사하고 끼워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폴란드 등 바르사뱌 조약기구 출신 나라들은 기존의 NATO 회원국과 표준을 맞춘 무장을 하지 않았다.
안보는 NATO에 맞기고 국방비를 줄여 경제개발부터 한 것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맞자 NATO 회원국과 통용되는 무기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때마침 우크라이나군이 익숙한 소련제 무기를 원했기에 이들은 자국 무기를 보내주고 NATO 표준형 무기를 도입하려는 노력에 나섰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은 NATO 표준 무기를 생산하지만, 긴 평화와 첨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편적인 무기의 생산라인을 줄여 놓았다. 우크라이나전으로 이들도 자국군의 보편적 무기를 늘여야 했으니 수출할 여력이 적었다.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을 향하여
한국과 일본은 NATO 회원국이 아니지만, 미군과의 무기 호환을 위해 NATO 표준대로 무기를 생산한다. 그런데 일본은 자국산 무기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과의 대치 때문에 ‘사자방’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무기 생산을 유지해왔고, 수출을 위해 ‘가성비’ 증가에 전력해왔다. 이것이 중국의 팽창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리면서 ‘K-방산 수출 대박’을 만들어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러시아·프랑스에 이어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에 진입하도록 방위산업을 전략 산업화하겠다”고 선언할 정도가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첨단중의 첨단인 차기 이지스 정조대왕함 진수식에도 참석했다. 정조대왕함은 보다 개량된 SPY 레이더와 데이터링크 체계를 갖추고 있어, 수많은 대공 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다.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요격하는 ‘SM-3’, 한국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인 ‘해성’, 한국형 함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2, SM-3와 함께 함대 방공작전을 펼칠 한국형 중거리 방공미사일(천궁-3), 대잠(對潛)로켓인 홍상어, 그리고 개발 중인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탑재한다. 이러한 이지스함이 장차 건조할 한국형 항모를 호위하는 핵심 전투세력이 된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중형 전투기인 KF-21 시제기의 시험비행을 성공시켰다. KF-21은 미국의 FA-18과 유럽 4개국이 개발한 타이푼, 프랑스의 라팔과 견주는 전투력 완비를 목표로 한다. 이지스함과 KF-21은 완벽한 국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지스 체계의 핵심
인 SPY 레이더와 SM-3는 미국산이기 때문이다. KF-21 부품값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F-414 엔진도 미국산이다. 첨단무기에서는 미국의 독주가 뚜렷하기에 쉽게 시장이 열리지 않지만, 우리가 첨단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국방혁신 4.0’이 요구한 핵심 첨단전력 확보를 현실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장만으로는 국방을 강화할 수가 없다. 무장과 병력을 결합시키는 우수한 작전을 만들고 그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 처지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은 핵탄두를 탑재한 북한의 미사일 전력이다. 최근 북한은 우리의 현무-3와 흡사한 사거리 1500km의 순항미사일도 개발했으니, 유사시 초전에 탄도와 순항미사일로 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 이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로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정말 어리석다. 미국조차도 가상적국이 쏘는 ICBM을 완벽히 막을 수 없어 미사일 방어청을 만들어 MD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는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우리가 KAMD를 자신하는 것은 난센스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킬 체인을 갖춰야 한다.
포나 미사일 사격은 동시다발로 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장사정포나 미사일은 후방에서 먼저 쏘고 단거리 포는 전방에서 늦게 쏴, 동일한 표적에 동시에 떨어지게 해야 적의 핵심부를 궤멸시킬 수 있다. 그리고 방열한 포대와 발사대를 잽싸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상대의 역공을 피해야 한다. 미 육군은 걸프전 등에서 적이 펼친 이러한 공격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때문에 정보작전에 전력해, 적 포병과 미사일 부대가 대량사격을 위해 일제 방열에 들어갔다는 정보가 있으면 선제 포격으로 그들을 궤멸하는 작전을 만들어 시행하며 이를 킬체인으로 이름 지었다.
합참이 주도해야 하는 3축 작전
북한이 대량으로 미사일을 쏠 조짐을 보이면 육군 미사일전략사와 해·공군의 작전사는 가용한 모든 미사일을 발사해 선제타격해야 한다(킬체인). 그런데도 살아서 날아오는 북 미사일이 있으면 공군의 미사일방어사가 천궁-2와 PAC-3 등의 KAMD 자산으로 요격해야 한다. 그리고 육·해군의 전 포병과 공군의 전 전투기가 북한을 공격하는 대량응징보복(KMPR)작전을 펼쳐야 한다. 이 3축 작전은 한미연합사가 아닌 우리 합참이 감행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전력이 달려 보조전력으로만 참여할 뿐이다. 미 증원군도 지휘할 한미연합사는 그 후의 작전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국방혁신 4.0’은 이러한 작전을 의미하는 새로운 군사전략과 작전개념의 발전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 기세가 잠잠해지자 세계적인 에어쇼가 다시 열리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판보로 에어쇼에는 FA-50을 비롯한 다수의 K-방산이 출품해 주목을 끌었다. 첫 번째 전시관 입구에는 현대차의 미국 법인인 수퍼날이 UAM을 전시할 정도로 한국 방산과 항공업체는 적극성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는 홀수 년에는 서울에어쇼의 후신인 ADEX(국제 항공 우주 및 방위 산업 전시회)를, 짝수 년에는 순수 방산 전시회인 ‘DX 코리아’를 열고 있다. 올해엔 국군의 날 다음에 ‘DX 코리아 2022’를 열려고 하는데, 여기에 다수의 K-방산이 출품할 예정이다.
내년인 2023년 건군 75주년을 맞는 우리 군은 ADEX와 함께 우리 무기를 갖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벌일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이후 10년 만에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전군의 사열을 받는 거대한 열병식을 과연 볼 수 있을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안보지원사를 기무사로 복원하는 등 군 정상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 도상으로만 해 온 군 훈련을 실기동 야외훈련으로도 전환해야 한다. K-방산의 성공이 우리 군과 우리의 기개를 되살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