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침략 병탄한 일본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1869년 아이우 모시리(아이누의 나라)를 북해도로 개 명하면서 자기의 영토로 하였고 1872년에는 유구왕국 을 ‘유구번(琉球藩)’이라 하면서 영토로 편입시켰다. 1875년에는 ‘천도열도(千島列島)’를 집어 삼켰다. 1876 년에는 일본으로부터 1000km도 더 멀리 떨어져있는 오가사와라(小笠原島)를 자국영토로 삼았다.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는 1877년도의 정부 공포를 무시하고 1905년 1월 28일 독도가 무주지라는 이유를 내세워 슬그머니 시네마현에 편입시켰다. 그해 11월 17일에는 대한제국 자체를 일본의 보호국으로 삼 았고(을사 늑약) 이어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송 두리째 병합했다.
이 얘기는 내 말이 아니고 일본의 저명한 학자인 사 토오 쇼징(佐藤正人)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런 일본의 영토가 2차대전 중인 1945년 7월 26 일 3대 연합국(美·英·中)의 포츠담선언으로 획정되 었다. “일본의 주권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구 슈(九州), 시코쿠(四國) 및 여기서 결정한 도서지역으로 한정한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의 형식을 통해 8월 14 일 이를 수락했다. 다른 어떤 이의도 달지 않았다.
1946년 1월 29일에 발표한 연합국 최고사령부 훈령 (scapin) 제677호에서도 역시 독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 외되고 있었다. 훈령에서 “일본지역은 다음과 같이 한 다”고 하면서 제외된 지역으로 “울릉도 제주도 독도” 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1890년 대통령령(令)과 1947년에 제정한 법률에 따 라 설치된 미국의 지명위원회(BGN : United States Board on Geographic Names)에서도 독도는 한국영 토로 돼 있었다.
미국사람들이 상용하는 공식명칭인 리앙크루 섬(Li-ancourt rocks :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의 포경 선의 이름에서 따옴)의 소속국(country code)을 확인해 보면 분명히 그것은 한국령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런 표기가 어느 시점 한때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territory belonging to no country)”으 로 표기된 적이 있었다. 일본의 끈질긴 로비 탓이라고 할 것이다. 2008년 7월의 일이다. 그러나 곧 이어 부시 대통령(아들)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측은 이 문제를 양 국 정상 간의 의제로 삼도록 하였다. 그러자 부시 대통 령은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검토를 지시해 원상회복토 록 조치한 적이 있었다.
독도에 대한 일본측의 로비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에도 맹렬하였다. 당시는 한국이 6·25전쟁을 치르기에도 힘든 시절.
이런 사정을 이용해 일본은 치열한 로비를 통해 1951 년 8월 10일 러스크 미 국무부 차관보로 하여금 “독도 는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는 편지를 한국에 보내도록 공작을 펴기도 했다. 물론 이 편지는 의미 없는 것으로 끝났지만 결과적으로는 “일 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한과 청구권을 포 기한다”라는 내용으로 조약은 맺어졌다. 다시 말하면 독도가 한국령임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측에서는 독도는 당연히 울릉도의 속도(屬島) 이기 때문에 빠졌으려니 했으나 일본은 그렇게 생각하 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은 연합국 훈령 677호 와는 다른 내용의 것으로 발표됐기 때문에 자기들의 승 리로 간주하는 태도였다.
하여튼 일본이 독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마고사키 우케루(孫崎 享).
1) 한반도와 오키시마(隱岐島) 사이에 울릉도와 독도 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고지도가 많다.
2) 1618년 돗도리번의 상인들이 번주를 통해 막부에 서 울릉도(다케시마)에 도항 면허를 받았다.
3) 오타니와 무라카와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해바라 기 문양을 앞세워 울릉도에서 어로에 종사했고 채취한 전복을 쇼군가문에 바치면서 단독으로 섬 을 경영했다.
4) 에도시대 초기인 17세기 중반에 이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한 두 마디로 배척할 수 있다.
첫째, 고지도로 말하기로 하면 일본영토로 표시한 고 지도는 거의 없고 한국영토로 표시한 지도는 넘쳐난다. 일본이 자랑하는 하야시 시혜이(林子平)의 <삼국접양 지도(三國接壤地圖)1735년>의 경우에도 울릉도(다케 시마)와 마쓰시마(독도)를 조선영토로 색칠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마도도 한국영토로 색칠해 있는 것을 우리 는 볼 수 있다(김상훈). 또한 1875년 일본육군성이 만든 <조선 전도>와 일본 해군성이 1886년에 편찬한 <조선 동해안지도>에도 독도는 한국령으로 돼 있다.
둘째로 1618년 일본이 조선정부 몰래 울릉도에 대 한 도해(渡海)면허를 일본인들〔오오타니(大谷甚吉)와 무라가와(村川市兵衛)〕에게 발부한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러한 도해면허는 1661년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1696 년 1월 28일, 일본 도쿠가와 막부 관백은 일본인의 도 해금지를 명령했다.
안용복의 활동으로 울릉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 번에 걸친 도해면허도 자연 취소되었다. 그리고 막부는 덧붙였다. “죽도를 조선으로부터 빼앗은 것은 아니니 돌려준다고 는 말할 수 없다.”
세 번째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에 시마네(島根)현 고시로 독도를 일본에 강제 편입했다. 그러나 이 때도 당 시의 내무대신 후사가와 겐세이(芳川顯正)가 독도는 한 국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강력히 반대했다는 사실 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이즈미 마사히코(泉 昌彦)〕 그 뒤 1924년에 발간한 일본 중등학교 교과서에는 분명히 “독도가 조선땅”이라 명기되어 있었다.(김문길)
이처럼 어느 역사 어느 자료를 보아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못박은 흔적은 없다. 분명히 말하건대 일본 은 독도에 관해 말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은 일본 학자들이 먼저 안다. 오직 일본 외무성과 정부만 딴소 리를 한다.
일본에 극우파 출신의 수상이 취임하면서부터 평화 헌법을 폐기하고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모조리 왜 곡하려고 대든다. 특히 초등학교 학생에게까지 독도 는 일본 땅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가르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동경 한 복판에 독도 전시 관까지 만들어 독도가 자기네 것인양 선전하고 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언제인가는 일본이 반드시 되 찾아 와야 할 영토라고 자국민을 넘어 세계사람들에 게까지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어느 시점 에 있을 선전포고를 미리 예비 저장하고 있음을 의미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일본은 독도에 대한 이러한 예비된 선전포고를 즉각 철회하여 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