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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북핵, 해결의 실마리 잡아가고 있나
장소 자유센터 평화대연회장
일시 2008년 7월 16일
인사 윤덕민 박사(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비핵․개방․3000’ 으로 북핵문제 돌파해야”

구 소련의 마지막 외상인 셰바르드나제가 1990년 가을 한․소수교 사실을 통보하려고 평양을 방문했다. 그 때 현재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 외교부장이 "한․소수교는 핵무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16년이 지나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2006. 10)하게 된다. 핵실험은 핵보유국임을 알리는 가장 공개적인 행위이므로 북한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핵보유국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한국이 북한보다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북한은 흡수통일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핵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에 있었다고 본다.

흔히 미국이 대북 압살정책을 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북한에 대해 압살을 시도했던 주체는 중국이었다. 북한은 점차적으로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자주권 확보를 위해 핵개발을 시도한 측면이 있다. 남한에 흡수되는 것도, 중국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정권유지 차원에서 핵개발을 선택했던 것이다.

북, 南 흡수통일 中 위성국가화 전락 우려 핵개발
‘핵개발, 미래 없다’․‘핵포기, 미래 있다’ 전달해야

20여 년에 걸친 북핵 협상 역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북한이 핵협상에서 만은 미국을 대화 상대로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핵 능력에 대해서 묵인해 준다면 절대 미국에 대해 위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부시 미 행정정부는 지난 기간 대북 핵정책에서는 실패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시 정부가 대북 강경책만 구사해왔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에 대해 압박정책을 제대로 구사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부시 1기 정부까지만 해도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은 있을 수 없으며 6자회담이라는 다자회담의 틀 속에서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2기에 들어서는 BDA에 묶여 있던 자금동결을 해제해주는 한편 경제적 인센티브까지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이 모든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2․13합의를 이뤄냈다.
2005년 9월19일자 공동성명을 보면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프로그램의 폐기’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런데 2007년 2월13일의 합의문에는 ‘핵무기’라는 용어는 빠져 있고 ‘모든 핵프로그램의 불능화’만 제시돼 있다. 결국 핵무기가 합의문 상에는 없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서는 핵문제가 진전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북한은 현재 6개 이상의 핵폭탄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2․13합의에서 ‘핵무기’라는 용어가 빠지게 됨으로써 협상의 진전을 이뤄냈으며 북․미관계도 급진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핵문제는 현재 3단계 과정을 통해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 첫번째 단계는 영변에 있는 핵시설을 폐쇄(shut down)하는 단계로 북한은 핵시설을 폐쇄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BDA에 묶여 있던 동결자금을 해제해 주었다.

둘째는 ‘불능화’(disablement) 단계인데 불능화는 완전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니며, 최근에 냉각탑을 폭파시킨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냉각탑 폭파는 불능화 단계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잠정적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 재가동의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핵폐기 단계는 북․미간 국교정상화 과정을 통해 진행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2․13합의에 따르면) ‘핵폐기 단계’ 속에 핵무기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6자회담에서는 북한이 신고하는 내용을 검증하는 것이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는데, 신고한 내용에 대한 검증은 원자로나 재처리 시설의 시료를 채취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핵 문제 협상과정 중 한 번도 이 검증 절차가 이뤄진 적이 없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함으로써 검증이 무산돼버리고 말았던 경험도 있다. 북한이 이 검증과정에 앞으로 어떻게 응할 지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부시 정부는 플루토늄을 추출해해 핵무기의 양을 늘리는 것을 막고 이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외교적 성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미래가 없다’는 메시지와 동시에 ‘핵을 포기하게 되면 미래가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어야 했으나 혼란만 겪고 북한에게 끌려 다니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한국 혼자만의 힘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6자회담이라는 틀 속에서 다자회담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6자회담 당사국과의 외교적 공조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됐다. 결국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5개국이 철저히 공조해 북핵 문제를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북한에게도 핵 포기에 따른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전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비핵․개방․3000’ 구상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구체적인 대북정책이라기 보다는 북한이 3,000달러에 이르렀을 때 남북 경제교류가 가능하다는,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 수준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요컨대 비핵화가 되지 않으면 어느 나라도 북한에게 재정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10월 4일 정상선언에서도 비핵화를 조건으로 하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비핵화의 주체는 북한이다. 그래서 개방과 의지가 중요하다. ‘비핵․개방․3000‘ 구상을 6자회담 당사국 공동의 프로젝트로 만들 수 있다면 북한을 가장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