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역사’ 여는 만남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4월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첫 만남, 우리측의 공식환영식, 남북정
상회담과 환영 만찬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시 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악수를 한 뒤 공식
환영식을 거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본격적인 정상
회담에 돌입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반갑습니다”를 반복하면서 “마음의 설렘이 그치지 않는
다”라며 “대통령이 이렇게 판문점 (군사)분계선까지 나
와 맞이해준 것에 대해 정말 감동적”이라고 했고, 문 대
통령은 “여기까지 온 것은 김 위원장의 아주 큰 용단이
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역사의 출
발점에서. 김정은 2018년 4월 27일’이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오전 10시 15분부터 시작한 회담 모두발
언에서 오늘 만남을 만들어낸 김 위원장의 용단에 경의
를 표한다며 “통 크게 대화를 나누고 합의에 이르러서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북남관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그런 순간에서,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그런 마음”이라며 “원점으
로 돌아가고 이행하지 못하는 결과보다는 미래를 보며
지향성 있게 손잡고 걸어가는 계기가 되자”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0여 분
간 회담을 갖고 각자 오찬을 한 후 오후 다시 만나 군사
분계선 표식이 있는 도보다리에서 단독회담 시간을 가
진 후 회담 선언문에 서명했다. 회담 선언문에는 한반
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개선과 협력 등
을 담았다.
북한 매머드급 수행원 참가… 회담 무게 더해
북측은 이번 회담에 매머드급 수행원이 참가했다. 김
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실질적 최고지도자인 상황
에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원장을 포함해 이번 정상회담을 내용적으로, 형식적으
로 완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김 상임위원장은 2000
년과 2007년 정상회담 때도 당시 김대중 대통령, 노무
현 대통령과 면담 또는 회담했는데 이번 회담에도 수행
원으로 참여해 남북 간 세 차례 정상회담과 모두 인연
을 맺게 됐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개
회식에 참석하는 고위급 대표단으로 방남하며 실질적 2
인자임을 과시한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수행으로 참가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구면인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
과 김 위원장 사이에서 신뢰의 가교 구실을 했다.
북측은 여기에 주요 의제인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
관계를 책임지는 수뇌급 인사를 총망라했다. 우선 비핵
화에서는 리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과 리용호 외
무상이 포함됐다. 둘은 북한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며 앞
으로 미국과 비핵화 협상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
사들이다. 리 부위원장은 스위스 대사를 지내며 김 위원
장의 유학 시절을 챙기며 사적 친분을 쌓은 데다 오랜 기
간의 서방 생활로 국제사회 여론을 잘 알고 있다. 또 리
외무상은 북한 외무성의 북미라인으로 오랜 활동을 쌓
아 리 부위원장과 북한 외교의 투톱을 맡고 있다.
평화정착 논의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군부 투톱을 수
행단에 넣은 점이 눈길을 끈다. 국방정책을 총괄하는 박
영식 인민무력상과 야전군을 총괄 지휘하는 리명수 군
총참모장이 참가함으로써 문재인 정부가 기대하는 비무
장지대(DMZ) 내 긴장완화 등의 조치를 끌어내고 이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
서실장은 브리핑에서 “(북한)군 핵심책임자들의 참석은
이번이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 긴장완화에 대
한 내용이 중요하게 다뤄져서 포함한 걸로 이해한다”
고 말했다.
미·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운명 가르는 무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으로의 전환을 위한 합의 수준이다. 비핵화·평화체제
문제는 남북 합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미국이라는 ‘상
수’가 필요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 등 여타 한반도 문
제 관련 당사국의 관여도 상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를 자처한 문 대통령이
실제 북한과 미국을 움직여 현재의 ‘큰 판’을 이끌었고,
이를 위한 첫 시동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성패가 이후 열릴 미·북정상회담, 나아가 한반
도 운명 전체를 좌우할 정도로 파괴력을 품고 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시선은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이른바 ‘4·27
선언’에 담긴 평화체제의 선결 조건인 종전선언과 비핵
화 문제에 쏠렸다. 이미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소
통 창구를 다변화한 남북은 적지 않은 접촉으로 정상
회담 의제를 가다듬어 초안 수준의 합의문을 마련해 왔
지만, 이날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비핵화와 종전선언
이슈는 정상회담장의 두 정상의 의지를 담은 것으로 전
해졌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엿새 앞둔 4월 21일 풍계
리 핵실험장 폐기와 향후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시험발사 중단이라는 신뢰 조치를 통해 비핵화
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함으로써 한·미 정상의
기대감을 키운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2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라고 환영하면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고 평가했다.
이제 미·북 정상회담이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바통을 이어받아 비
핵화 문제를 논의할 미·북정상회담의 진행과정도 주목
된다.
4·27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본게임이 될 미·북정상
회담의 향배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로 떠오른 가운
데 한·미 간 긴밀한 공조 속에서 미·북정상회담 준비에
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장소와 시기 ‘퍼즐 맞추기’를
포함해 사활을 건 미북 간 수 싸움도 한창이다.
실제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4월 13일 전화 브리
핑에서 아직 날짜와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서도
“최근 몇 주간 미·북 간에 끊임없는 접촉이 있었다”며 “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이 많이 동
원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수장으로서 그간 북한과의 막후
채널을 주도하며 미·북정상회담 준비를 총괄 지휘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지명자가 의회의 인준 문
턱을 무사히 통과, 공식 취임하면서 준비 작업은 한층 탄
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그에 맞춰 미·북 정보라인 간 ‘
비밀 채널’이 국무부-외무성 간 공식 외교라인으로 옮겨
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회담의 개최 D-데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3월 8
일 한국 특사단을 통해 김 위원장의 초청장을 받았을 당
시 ‘5월 이내’를 언급했다가 지난 4월 9일 ‘5월 어느 시
점이나 6월 초’로 눈금을 살짝 조정했다. 이후 굴러가는
상황을 보며 미국의 페이스대로 탄력적으로 움직이겠다
는 뜻으로 보인다.
4·27 남북, 5월 한·중·일 및 한·미 등 미·북정상
회담 전 잡힌 연쇄 정상회담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5월
말 또는 6월 초’로 시기가 압축되는 가운데 구체적 날짜
는 비핵화 사전논의의 추이 및 장소 결정 등과 맞물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이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조치’에 거부감을 드
러내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CVID)’ 관철을 위한 속도전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북한
으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경우 ‘택일’을 미루며
압박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비핵
화 관련 성과에 따라 미·북정상회담 일정의 완급이 조절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이유이다.
장소 선정이 조기에 이뤄지느냐 아니면 난항을 겪느
냐도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북회담 준비 과정은 치열한 전초전…
여기에 4월 13일 급작스레 이뤄진 ‘시리아 공습’이 정
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돌출 변수가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간 핵 보유를 체제 보장의 안전판으
로 여겨온 김 위원장이 시리아 사태를 지켜보며 비핵화
에 대한 심경 변화를 일으킬 경우 협상이 꼬일 수 있다
는 것이다.
‘역사적 현장’이 될 장소 선정을 둘러싸고 미·북, 그리
고 중재자 내지 길잡이를 자임한 한국 간에 3각 셈법도
복잡하게 가동되고 있다. 어느 곳이 낙점되느냐에 따라
상징성과 함의가 달라져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바로는 북한은 당초 평양 개최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으로선 트럼프 대통
령을 ‘안방’으로 불러들일 경우 정상국가 이미지와 함께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에 맞먹는 ‘동급’이라는 점을 부각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 카드는 정치적 부담을 고려할
때 미국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지이다. 미국 쪽
에서 ‘경호상 수백 명의 미국 선발대가 성조기를 매단 캐
딜락을 타고 평양을 누비고 다녀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고 북한 측에 반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언급한 ‘햄버거 협상’의 무대
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도 가능한 후보지이지만, 현
재까지 비중있게 거론되지는 않는다. 경호상의 문제와
함께 전용기 상태 등 김 위원장의 장거리 이동에 현실적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미북 양쪽의 홈그라운드를 제외
한 중립적인 ‘제3의 장소’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
히 북측이 차선책으로 제안한 것으로 소문이 도는 몽골
울란바토르가 의미 있는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몽골과
함께 스웨덴도 유치에 적극적이다.
중재자인 한국도 여전히 후보이지만 미·북 모두 자칫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남북정상회
담이 열리는 판문점과 함께 일각선 제주도의 이름을 올
리기도 한다. 만약 판문점으로 결정된다면 분단의 장소
에서 화해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
목이 집중될 수 있다.
하지만미·북 정상의 스타일상 파격이 연출될 가능성
도 완전히 차단할 순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
보회의(NSC) 보좌관 취임 첫날인 4월 9일 각료회의에서
‘5월∼6월 초’ 시점을 공식화하는 등 미·북 담판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4월 12일에는 “아주 멋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한껏 표하기도 했다.
전인미답의 길에 발을 디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
장. 회담의 성패와 함께 누가 승자가 될지 여부는 협상장
에서의 개인기와 별도로 남은 한 달여 간 전초전에서의
승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