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립운동가 -조경환 선생

  • No : 2279
  • 작성자 : 한국자유총연맹
  • 작성일 : 2018-11-06 17:21:15

11월의 독립운동가

광주 어등산에서 순국한 불굴의 의병장 일본군의 총탄 속에서도 결사항전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경환 선생을 2018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76년 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선생은 시대의 전환기에 유학(儒學)을 공부했다. 20세기 초반 노골적인 일제의 침략이 자행되던 시기에 전국을 순회하며 조국의 현실을 목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차려 후학을 육성했다.


선생은 1907년 후반 호남지방에서 기삼연과 김준 등이 의병을 일으켜 고창읍성을 점령하는 등 맹활약을 떨치자 선생은 그 해 12월 중순 김준 의진에 합류하여 좌익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선생은 김준 의진에서 좌익장을 맡아 함평읍, 창평 무동촌(茂洞村), 장성 낭월산(浪月山), 영광 월암산(月岩山), 광주 어등산(魚登山) 등 수많은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1908년 음력 3월 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의병장 김준이 순국하고, 일본군이 추격해오자 함평 당산촌 나평집(羅平集)으로 후퇴하여 후일을 도모했다. 일본군의 진압작전이 종료되고 감시망이 느슨해지자 흩어진 의병들을 다시 모아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고, 이때 전북 이석용(李錫庸)의진에서 활동하던 전수용과 연합하여 용진산(聳珍山)에서 200여명 규모로 의진을 재편하고 의병장이 됐다.


조경환 의진은 1~200명 내외의 군세를 형성하여 전남 광주, 함평, 영광, 장성, 담양 등지를 무대로 활동했다. 의진은 일본제 30년식 보병총과 기병총 4정, 한병총(韓兵銃) 12정, 천보포(千步砲) 8문, 개조 화승총 약 60정 등의 열악한 무기로 일본군경과 맞섰다.


1908년 12월 19일(양력 1909. 1. 10.) 조경환 의진은 야마다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 20명, 체포 10명의 피해를 입었다. 선생은 총탄을 맞고서도 부하들의 명단을 불사르고 어등산 전장에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조경환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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