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국가가 책임질 수 없는 개인의 행복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 No : 262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9-02 13:50:15
  • 분류 : 자유마당


 
최근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 같이가치가 《About H》
라는 흥미로운 책을 발간했다. 이 책
은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대국민
실시간 행복 연구’”보고서다. 과거 기
억에 의존하는 행복이 아니라 현재
실제로 경험되는 행복을 측정한 것이
다. 이런 조사가 행복지수가 낮은 우
리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수 있을
까? 이런 책을 읽고 지식을 얻으면 우
리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 했다. 그는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
으로 육체적이거나 물질적 쾌락이 아
니라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 선(善)
과 덕(德)의 추구를 권장했다. 행복은
향락적인 삶이나 정치적인 삶이 아니
라 관조적인 삶에 있다고 믿었다.
의미와 목적의 추구가 행복으로 인
도한다는 철학자의 말은 변치 않는
진리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물
질 곧 경제적 부가 행복과 밀접한 관
련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와 비교해서 물질적으로 매우 풍
요로워졌음에도 풍요로워진 만큼 더
행복해진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더 행복한 것도 아니고, 행복하기 위
해 가난해져야 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부와 행복은 어떤 관계에 있
는 것일까? ‘이스털린의 역설’은 부와
행복의 관계를 잘 설명한다. 이 가설
에 따르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
득이 아무리 증가해도 행복은 더는
증가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일
정 수준’을 금액으로 정확하게 표시
할 수는 없지만,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은 행복할 수 없
다는 것이다. 최소한 의식주가 해결
되어야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넘어 소득이 더 증가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과 행복이 비례 관계에 있지 않
다는 경험적 연구는 ‘일정 수준’이 넘
은 상태에서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치관이라는 설명에 설
득력을 갖게 한다. 사람은 객관적인
행복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가치관이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행복은 개인
의 주관적 심리 상태이고, 주관적 심
리 상태는 순간순간 변한다.
《About H》는 이런 사실을 잘 말해준
다. 통계적으로 월요일에 불쾌감을 느
끼는 사람들이 많고, 금요일과 토요일
은 적다. ‘연령별 평균 안녕지수’는 20
대가 가장 낮고 60대가 가장 높다.
또한 이 책은 ‘행복한 사람의 성격’
과 ‘덜 행복한 사람의 성격’을 비교한
다. 행복한 사람의 성격은 늘 새로운
생각에 열려 있고, 호기심이 많으며,
계획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행
해 나가려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고 외부 활동도 많으며, 정
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일상생활
에서도 스트레스를 비교적 적게 받는
편이다. 이와 달리 ‘덜 행복한 사람의
성격’은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
을 선호하며,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서 다소 즉흥적인 경향이 있으며, 사
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시
간이 많고, 부정적인 사건에 민감하
게 반응하며, 스트레스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성격 및 가치관은
행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따
라서 성격과 가치관의 변화는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력이 성
격과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더 많이 가져야만 더
행복해질 거라는 위험한 착각”에 대
한 설명이다. 연구진은 “물질을 획득
하고 소유하는 것을 성공한 인생의
최고 기준으로 삼는 물질주의적 가치
관”을 측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
항을 제시했다.
이런 문항에 대한 응답을 기초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물질적 가치
를 중요하게 여길수록 행복한 인생과
는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불행한 인
생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물질주의 공화국’이다. 미국과 일본
보다 더 물질주의적이다. 이러한 결
과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제 수
준에 비교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행복지수가 낮은지를 설명한다.
문제는 우리 가치관이다. 서울대 장
덕진 교수는 우리 가치관의 현주소를
‘세계문화지도’를 통해 설명한다. 전
세계 100여 개 국가가 참여하여 거
의 비슷한 시기에 측정한 국가별 가
치관의 특징을 2차원 평면에 그린
‘세계문화지도’에 따르면 한국인은
매우 물질을 중시하는 생존적인 가
치관을 가진다. 사람들의 가치관 변
화는 경제성장과 아
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인당 국
민총생산(GNP)이 2
천 달러 미만일 때는
물질적 가치관을 가
진다. 5000달러를 넘
어가면 물질적 가치
관이 아니라 자기 표
현적 가치관이 빠르
게 늘어나, 1만 5000달러를 넘게 되면
개인의 성장과 내적 가치를 중시하는
탈물질적인 자기 표현적 가치관을 갖
는다. 세계적으로 이 단순해 보이는
경향성에는 예외가 거의 없는데, 한
국은 예외에 속한다.
우리는 GNP가 2000달러였을 때나
3만 달러를 넘은 현시점에서도 물질
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
들이 물질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고,
자기 표현적 가치관으로 옮겨가지 않
은 것은 아마도 급격한 경제성장으
로 지금도 남아 있는, 경제적으로 어
려운 시기에 겪었던 경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3만 달러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개인의 발전과 자유, 정책 결
정에 대한 시민 참여, 인권과 환경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자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탈물질주
의자의 비중이 45% 내외인 데 비해
한국의 탈물질주의자는 15% 정도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분석에 따
르면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가치관이 탈물질주의로 변해야 한다.
어떻게 탈물질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까? 그것은 개인 가치관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행복의 조건에 대한 개인
의 자각과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안전망이 확보되면 행복은 국가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다. 심
성의 연마나 덕성의 함양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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