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협치 성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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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2-01 13:42:27
  • 분류 : 자유마당

민관협치 성공의 조건

정책수요 개발·실행·평가 과정에서 시민 다수의 참여 유도부터

 

이영은(경기도 주민참여예산위원)

 

20066월 한 시사주간지는 금주의 신조어코너에서 협치(協治)’‘governance’의 번역어로 소개하며 지금까지 소개한 신조어 가운데 가장 어려운 단어라고 덧붙였다. 그 협치가 15년이 지난 지금은 연일 신문 지상을 비롯한 언론과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전에는 협치라는 말보다 거버넌스라는 외래어 그대로의 말이 더 많이 쓰였다. 사실 협치는 거버넌스의 번역어 중 하나였지만 거버넌스 개념을 명확히 전달하지는 못한다고 여겨져 왔다. 실제 최근 협치라는 단어가 쓰이는 맥락을 살펴보아도 기존에 거버넌스 개념을 대치하고, 발전적인 개념을 제시하기보다 소통(疏通)’이나 협력(協力)’의 개념을 포괄하는 정치적인 수사로서 언론과 정치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 등이 정치적인 수사로 활용하는 것 외에 협치가 쓰이는 또 하나의 맥락은 시정참여와 행정혁신을 위해 서울시와 경기도 등에서 진행하는 민관협치 활성화와 관련한 움직임이다. 고인(故人)이 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민선 5기부터 협치를 줄기차게 강조해왔고, 민선 6기에는 서울시 시정철학의 기조로 협치와 혁신을 함께 제시했다.

 

민관협치 요청하는 사회적 흐름

민관협치를 강조하는 정책전문가들은 민관협치가 거부할 수 없는 사회흐름이라는 인식 위에서 출발한다.

이우철 한국공공정책학회 전문연구위원은 복지국가의 위기와 다양해진 시민의 요구, 복잡해진 사회문제들 속에서 협치는 오늘날 대부분 국가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한경숙 투데이경제 사회부장은 정치적 수사로서의 면피형 협치와 최근 지자체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는 협력적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혁신형 협치를 구분해야하며 이익과 욕망으로 갈라지고 해체된 우리 시대에 협력적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말했다.


민관협치가 시대적 요청으로 자리잡게 된 데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관()주도, 관료제로 대표되는 기존 행정체제가 가지고 있던 비효율성, 비민주성이 현대에 등장하는 문제와 이슈들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정호윤 국정리더십포럼 상임대표는 기존에 관이 가지고 있는 관료적인 의사결정 체계는 너무 느리거나 분업의 원리를 지향하고 있고, 안정화와 완성형을 선호하기에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협소하고 현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시민에게서 문제를 떼어내 관에서 해결하는 방식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속도감을 따라잡기에도, 문제 당사자로서의 자기결정권 행사와 민주적 결정 과정을 존중하는 시대정신에도 적합하지 않다.


디지털화로 인한 초연결사회의 도래 역시 민관협치로 움직이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정보 접근 및 확산에 대한 경계가 없어지면서 시민이 사회적 자원과 의제에 관계를 맺는 방식이 기존 체제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나의 사회문제에 동시접속하는 이해관계자가 무한대로 늘어나는가 하면, 과거에는 지극히 지역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것들이 국가적 이슈로 퍼지고, 이전에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사회의제화 되는 일이 잦아지고 또 빨라지고 있다.


특히 민()의 주체로서 시민 주체들의 역량이 강화되고 시민조직의 형태와 포괄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시민단체 형태의 조직뿐 아니라 마을,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등 기존에 정부-기업-시민의 섹터 개념으로 분류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조직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더 넓어진 시민사회 생태계 속에서 사회혁신가로 분류되는(혹은 타인의 분류를 거부하는 독립적인) 조직과 개인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관의 입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혁신활동가들로부터 얻게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동성의 장점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는 것이 이제 중요한 전략이 됐다.


그동안은 이 자원을 공모, 인력채용, 용역 등의 방식으로 결합해 왔으나 앞으로 협치의 관점에서 민과 관이 대등한 관계를 맺으며 정책 수립과 결정, 평가까지의 체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더 차별화된 협력의 방식이 필요하다.

 

혁신과 협치의 상호연관성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여러 차례 서울시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로 협치와 혁신을 강조했다. 여러 강연, 대담, SNS 소통에서 서울시는 협치와 혁신 양날개로 날아가는 도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단순히 수사적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이 말 중요성이 더 크게 울렸다.


이른바 혁신 없이 협치는 없고, 협치 없이 혁신은 완성될 수 없다는 점이다. 간단한 원리이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는 이 원리가 축소되거나 무시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필자가 현장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협치를 위한 혁신 : 협치를 위해 어떤 혁신이 필요한가?

2016년 말 발간된 NESTA‘Social Innovation policy in Europe : Where next?’는 이에 대한 유용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보고서는 사회혁신이 사회혁신정책(Policy As Social Innovation)으로 실행되어 사회적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지만 때로 사회구조적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문제의 대증적(對症的) 해결에 치중하여 진정한 지속적 변화를 제한하게 될 위험성도 있다고 평가한다.


그 때문에 사회혁신을 위한 정책(Policy For Social Innovation : 사회혁신이 지속해서 추진할 사회, 제도적 환경 마련과 시스템의 구축)이 중요하며 이는 정책에 소외됐던 집단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정책수립 과정에 참여할 합리적으로 열린 구조의 정책참여 프로세스, 거버넌스의 마련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합리적이고 열린 정책참여 프로세스와 거버넌스 구조를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민관협치의 모습이라 생각한다면, 이를 뒤집어 민관협치의 과정이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을 때 실행하는 혁신은 사회문제를 덮기만 하는 임시방편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민관협치 활성화를 위한 과제

민과 관이 협치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는 것은 관료적 정책 추진 및 의사결정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혁신일 수 있다. 기존에 민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행정의 권한을 넘겨주는 것은 물론, 새로운 민간주체를 발굴하고 효과적인 논의와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역할이고 과제일 것이다.


침체된 출판과 서점 시장에 혁신을 일으키며 서점의 미래라고 불리는 츠타야 서점을 만든 일본의 마스다 무네야키는 생산력과 인프라의 발전에 비해 사회의식이나 체제의 변화가 느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휘되어야 할 능력을 기획력이라 칭하면서, 특히 생산자 중심의 관점으로 공급 위주로 만들어진 구조들을 수요자들의 필요 중심으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그가 만든 츠타야 서점은 서점은 주인이 책을 파는 곳이 아닌 고객이 책을 사는 곳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 책을 매개로 고객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다. 분야가 전혀 다른 서점업계의 이야기이지만 느리게 변화하는 조직의 대표격으로 이야기되는 행정조직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민의 삶과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모습을 생각해볼 때 그 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행정에 요구되는 기획력이란, 단순히 새로운 프로그램, 사업의 기획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행정의 시스템 전반을 혁신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과 실천이며, 이를 통해 시민에게 공공적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삶의 모습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관이 민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하고 민이 요구하면 다 들어주어야 하는가?’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행정은 시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돕는 주체다.

따라서 먼저 움직여야 할 의무는 행정에 지워진다. 정책수요 발굴부터 설계, 실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자.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민이 이 과정을 주도하는 주체로까지 자리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현재의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 고민과 변화는 행정조직의 유연한 문화 조성, 열린 참여에 대한 공무원들의 대응역량 개발, 정책 추진 프로세스의 변화, 행정절차의 간소화 등 많은 부분을 포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야 비로소 협치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고, 우리 사회 곳곳과 권력의 상층부까지 변화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만 이러한 초기과정임에도 우려되는 것은 느림보 정책이라 불리는 민관협치가 시작부터 성과나 예산 등에 쫓겨 잰걸음을 보이지는 않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행정으로서는 오래된 기존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설득력을 가지려면 구체적인 성과가 필요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 등이 추진하고 있는 민관협치의 모습에서 현장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의 속도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의 서울시와 경기도,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 중심의 사회혁신이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지는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산과 절차를 논하기 이전에, 단기적 교육과 워크숍을 반복하기 전에 좀 더 구체적인 필요와 어려움을 듣고 협치를 위한 혁신 기반을 더 단단히 다져가는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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