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한일관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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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9-03 15:32:02
  • 분류 : 자유마당

독도와 한일관계의 미래

vs.역사문제 해결하지 못한 채 적대적 우방으로 공생

 

이민화(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한일관계사에 있어 독도라고 불리는 작은 섬의 영유권을 두고 벌어진 양국 사이의 분쟁만큼 양자관계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어온 문제는 없다. 이 글에서는 독도 분쟁의 본질을 검토해보고, 해결의 출발점은 민족주의적 정서에 기초한 적극 외교가 아닌 차분한 접근에 있음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독도 문제는 한일관계에 있어 양국이 필요에 따라 활용해 온 국내 정치문제 해결의 만능열쇠였다.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 정치권의 지지율 하락에 직면했을 때 그 해결 수단으로 독도를 활용해 온 것이다. 1952년 이래 현재까지 일본은 주기적으로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는 반일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었고, 정부는 그것을 이유로 일본과의 관계를 관리해오곤 했다.

물론 독도 문제 때문에 한일 양국 우호 관계의 근본이 손상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적은 없다.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위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정상화되기를 원했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그 의지가 이어졌다. 당시 일본은 독도 문제를 한일간의 분쟁지역으로 명시하기를 원했고, 한국 측은 독도 문제를 아예 분쟁 이슈에서 제외하려 했다. 한일협정 당시 한국은 독도 문제 해결을 제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고 제의했고 이에 대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었다.

이에 한국은 독도가 분쟁 이슈에 포함될 경우 한일협정 자체를 거부하겠다고 공언했고, 결국 사토 일본 총리는 한일 간 분쟁 관련 문건에서 독도를 제외하기로 결정, 그 결과 독도 문제는 일단 제외한 채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될 수 있었다.

한국은 독도 문제는 한일 간에 거론할 가치도 없는 문제라는 인식이었고, 사토 총리는 일본이 독도라는 문구를 뺀 것은 외교상의 정치적 결정으로, 일본이 향후 독도를 분쟁지로 거론 안하겠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남겼다.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분쟁 거리로 삼지 않으려는 한국과 지속적인 현안으로 만들려는 일본과의 상반된 입장이 현재까지 평행선을 긋고 있다.


역사 인식과 이해관계

사실 탈냉전 초기만 해도 세월이 지나면 경제적 상호의존과 세계화의 심화,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대한 기억의 쇠퇴로 인해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 간의 분쟁이 점차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은 1997년 한일 어업협정 개정 협상과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조례 발표 이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가 될 역사적인 사료의 측면에서도 한국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나 연구성과가 질적 양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많고 이미 실효적으로 독도를 관리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 정부는 크게 대응하지 않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유리한 행동이라 판단한 듯하다. 이런 상황은 때로는 우리 국민들에게 소극적인 답답함으로 비치기도 했고 결국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 간에 벌어졌던 첨예한 대결의 여파는 현재 양국 정부의 리더십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이 독도/다케시마,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과 관련하여 국내 여론과 홍보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201299일에 개최된 APEC 정상회담에서 한일 양국의 두 정상이 영토 관련 갈등의 수위를 낮추자는 합의에 도달한 직후인 911일부터 당시 민주당의 노다 정권은 1주일 동안 전국 70개의 신문에 독도/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을 실은 광고를 대대적으로 게재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센카쿠열도의 국유화 조치 이후 일본 국민들의 대한국, 대중국 체감온도가 급랭하면서 민주당 정권의 저자세 외교에 관한 혹독한 비판이 나타났기 때문에 일본 국내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쟁의 불씨는 동아시아에서 냉전 구도가 고착화되고 한국전이 진행 중이던 1951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있다. 구소련의 팽창을 경계하기 위해 일본의 협조가 필요했던 미국이 고의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애매모호하게 남겨 두었고, 이를 배경으로 독도를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속내에는 일본이 식민지 쟁탈을 위해 폭력과 야욕을 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려는 명예 회복 의식이 숨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여론몰이가 아시아에서의 영유권 갈등이 이미 법적, 경제적 영역을 넘어선 인식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자국민 교육과 홍보는 유리한 기억의 고지, 인식의 영역을 선점하려는 전략이기에 현재의 편향적 인식이 미래의 사실로 굳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앞으로 일본 국민 여론의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이후 현재까지 한일관계는 경색되어 있다. 정상회담을 통한 정상화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화된 바는 없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 사이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고 일본과 역사문제로 부딪히고 있지만, 다수의 한국인은 한일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일본과 역사 인식의 간극이 매우 크고, 한국인 중 다수가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며, 일본정치인 대부분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많은 한국인은 왜 한일관계의 회복을 원하는 것일까?

한국인은 한일관계에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역사문제로 갈등의 골은 깊지만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바라지만,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판단도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젊은 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일본은 한국의 반복된 과거사 사과와 배상 요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만, 한국인은 역사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형성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요약하면 한국인은 일본을 경제협력 대상 또는 지역 내 이웃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역사문제를 접어두고 협력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에는 회의적이고, 일본과의 안보협력이나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에는 거부감을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실질적 위협이 되는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역사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일본과의 안보협력,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용납하기 어렵다는 태도로 보인다.

한일관계에 대한 일련의 여론조사들을 보면 한국인은 일본에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산적한 현안에는 한일 양국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봤지만, 역사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묻어둘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이면에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 숨어 있었다. 어차피 쉽게 해결되지 않을 역사문제로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느니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의 협력이나 표면적 화해로 만족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역사문제로 인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한 답답함 마저 반영되어 있다. 외교에서 한일협력이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고 중국의 경제·군사적 부상이 뚜렷해지면서 한일관계 개선과 미국을 축으로 한 한미일 협력체제의 중요성이 더 부각된 현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전략적으로 한일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경제협력, 문화 및 인적 교류 등 한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일 양국 모두 역사 문제가 노력한다면 해결될 것이라는 미련은 버리고, 현실적으로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한일관계의 미래

냉전 시기 한일관계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의 연관성 속에 한국과 일본이 연계되어 비동맹 특수관계를 형성하였다. 한일 안보협력은 현실상 불가능했으나 경제원조는 가능했다. 동시에 과거사 문제는 애써 외면되면서 양국관계는 적대적 우방이라는 모순된 관계 속에 있어왔다.

시간이 지나며 가치관의 공유 및 힘의 상대적 균형화가 이루어짐으로써 한일관계는 대등적 관계로 전환되어 갔다. 한일간에 동일한 국가적 가치가 형성되어 갔으며, 냉전 시기 터부시되었던 안보 교류 및 대화가 진척되었다. 탈냉전이라는 국제질서 속에 한일관계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예전에 비해 적극적으로 동아시아 질서에 개입하면서, 이를 지탱하고 있는 한미일 협력체제를 견고하게 하려 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 내에서도 중국의 대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질국가와의 협력관계 구축에 대한 필요성이 제고되었다.

이러한 모멘텀이 확장되어 역사문제가 충분히 관리된다면 한일관계는 비약적 발전의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역사문제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일본 정부의 적극적 관리정책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 여부에 따라 신시대 한일관계의 구도는 크게 변할 것이다.

독도 문제 외에도 러시아 및 중국과 도서 영유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한국과의 협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독도 문제에 관한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독도 문제 외에 진행 되고 있는 다른 분쟁에 관한 일본의 협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일본의 독도 정책은 북부지역 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의 집착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두고 상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이 경험한 영토 상실의 뿌리 깊은 피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쿠릴 열도에 관한 러-일간의 협상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되기 전에는, 일본이 현재의 독도정책에서 선회하여 새로운 정책을 취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독도 문제를 국내정치적으로 필요할때만 남용하여 한일간의 간극을 더 멀어지게 하는 것 보다는 보다 절제되고 차분한 장기적인 외교전략이 필요할 때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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