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의 정신과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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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10-05 09:45:26
  • 분류 : 자유마당

한글 창제의 정신과 한류

과학적 우수성으로 지속가능한 문화수출품 될까?

 

이형대(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글 주목하는 세계의 이방인들

6년 전에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터키 이스탄불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발표시간에 여유가 있어, 설립된 지 560년이 넘는 이 유서 깊은 대학의 교정을 거닐고 있는데 검은 히잡을 쓴 여학생 한 명이 다가오더니 혹시 한국에서 오셨냐고 한국어로 물었다.

무척이나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초롱한 눈망울의 이 여학생에게 한국어학과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은 의예과 학생이며, K-POP이 좋아서 한국어를 독학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의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와 엑소 멤버들의 브로마이드를 꺼내 보였다. 그리고 훗날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서툴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소망을 말했다. 처음 본 외국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새록새록 친근감이 솟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멀고 가까운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이방인들이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요즈음에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작년의 통계 및 보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세계에서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7,730만 명으로 세계 14위이다.

2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21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750만 명의 재외동포를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한류의 확산 추세로 미루어 보건대, 이 지구촌에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세계 시민들의 한국어 사용 증가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그리고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거의 동어반복적으로 주장되는 사항이 한글의 독창성, 과학성, 우수성이다. 두루 알고 있듯이 한글의 자음들은 구강 안의 발음 상황을 모사하여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며, 모음들은 천(), (), ()의 요소에 가획의 원리를 활용하여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은 대체로 인정된다.

하지만 한글이 다른 언어 표기체계에 비해 우수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언어 표기체계가 있고, 각각의 문자체계는 상대적 차원에서 장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글이 절대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은 섣부르다는 입장인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필자의 역량으로는 이 논란을 판가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나 목적으로 관심사를 옮겨 보자면, 세종의 숭고한 뜻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가장 강력한 동기는 세종의 지극한 애민의식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분명하게 적혀 있듯이 한문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이 많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음을 가엽게 여겨 새로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훈민정음 창제 이전 세종 시대만 하더라도 문자 생활이란 곧 한문을 쓰는 일이었고, 그것은 곧 양반 사대부의 특권이었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지식의 독점은 곧 권력의 독점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남성 사대부의 지배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세종은 반대의 상소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어 여성과 일반 백성들에게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다. 한글의 보급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종종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백성들의 정감과 사유가 오롯하게 글자로 기록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전에 쓴 글 가운데 한 대목을 끌어와 본다.

 

한글로 쓰여진 조선시대 부부 사랑의 편지

우리는 지난 1998년 안동시의 택지 개발 중에 한 무덤에서 발견된 언문편지 하나를 기억한다. 이 편지가 언론에 보도되어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무척이나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이 한글편지는 경상도 안동에 살던 고성이씨 가문의 이응태라는 양반이 15866월 초하루에 31세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가 죽은 남편의 장례 직전에 급히 써서 시신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 일부분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자네 나를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으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던고. 매양 자네더러 내 이르되 한 데 누워서 이 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하리? 남도 우리 같은가하며 자네더러 일렀더니, 어찌 그런 일들을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고.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난 살 힘이 없어 쉬 자네와 한 데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이 짧은 편지글 안에서 유달리 사랑했던 젊은 부부의 애틋한 내면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더군다나 그녀는 임신 중이었는데 사별한 남편에게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사무치는 그리움의 절절한 심정을 애잔하게 적어 내고 있다.

이 편지가 우리에게 충격과 감동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성리학적 예교주의와 가부장적 종법 질서가 강화되어가던 조선 중기 상황에서 부부간 내밀한 정애의 표현이란 늘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는데, 한 여인이 꾸밈없는 진솔한 언어를 통해 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정감을 고스란히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리학적 이념과 규범, 윤리에 포획되지 않은 부부애의 정감이 생생하게 펼쳐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세종이 창제한 한글의 위대한 힘으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한글의 소통과 교화 기능

다음으로 백성의 교화 및 소통의 증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일종의 유교적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형률로 백성을 엄혹하게 통치하는 법치주의가 아니라, 백성이 스스로 본분과 예의를 알아 마땅하게 행동하는 일종의 예치시스템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백성과의 소통 및 교화가 필수적이었거니와 한글이 바로 그 매개체가 되었다.

송강 정철이 지방관이 되어 지역을 순시하고 보니 백성 가운데 부모를 구타하거나 형제간에 송사를 벌이거나 부부가 서로를 배반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 일로 고심하던 정철은 백성들이 본성이 나빠서라기보다도 추위와 굶주림에 마음을 해쳐서 예의를 닦을 겨를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곧바로 백성들에게 오륜의 이치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서 노래를 지었으니 이것이 바로 훈민가라는 시조다.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작품 한 수를 들어본다.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봐라 / 뉘에게서 태어났기에 모습조차 같은가 / 한 젖 먹고 자라나서 딴마음을 먹지 마라

형제가 서로의 살결을 만져보면서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닮은꼴임을 인지하고 서로 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이 노래는 근엄한 계몽보다는 살가운 인정에 호소한다. 이러한 교화와 소통에 힘입어 17세기 무렵에는 거의 조선의 모든 백성이 유교 윤리를 체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글이라는 표기수단은 위에서 아래로, 즉 통치자가 피치자를 교화하는 데만 쓰인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삼정의 문란과 더불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크고 작은 민란이 발생했던바, 한글은 지방관의 착취와 수탈상을 폭로하고 어진 정치의 실현을 촉구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1837년 이재가라는 거창 수령이 부임하여 탐관오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폭정을 자행하였다. 분노한 거창의 백성들은 거창이 폐창되고 재가가 망가하니(이재가가 모든 가정을 무너뜨리니) / 제리가 간리되고(모든 아전이 간교한 아전되고) 태수가 원수로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처럼 한글이 사용되고 백성들의 문해력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감각 또한 예리해졌다. 따라서 조선의 중세적 통치체제는 백성들의 저항과 더불어 균열을 일으키며 서서히 해체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세계인의 꿈과 감성 일으키는 문화예술 되길

이외에도 한글 창제의 동기와 목적에는 한자음 정리, 왕조의 정당성 홍보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면밀하게 따지기보다는, 관점들 달리하여 오늘날 우리 시대 한글의 역할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오늘날은 그야말로 지구촌 사회이다. 세계는 인터넷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각국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교류된다. 교역량 세계 10위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창의적인 한국문화, 즉 한류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실감한 적이 여러 번 있다. 3년 전에 우크라이나 국립 키예프 대학과 학술대회를 마치고 드네프르 강가로 산책하고자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리 중간쯤에 이르자 열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 소녀 5명이 다리 위에서 시디플레이어를 틀어놓고 음악에 맞추어 현란한 춤을 추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되어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니 BTS2주 전에 발표한 신곡이라고 한다. 같이 갔던 한국의 대학원생들도 잘 모르는 곡이라고 한다.

그 옛날 한글 창제의 동기가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한 애민의식에서 나왔다면 한글 탄생 575돌을 맞는 올해부터는 우리 한글이 세계시민의 꿈과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예술의 기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미 한글은 세계 몇몇의 표기체계가 없는 부족에게 보급된 바 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바우바우시에 거주하는 찌아찌아족, 태국 북부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라후족, 중국의 소수민족인 어웡키족을 포함한 몇 부족이 대표적인데, 그 성과가 기대만큼 크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방면의 선구적 의식이 있는 개인이나 학회 등 소수의 노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한글 세계화 정책 수립과 구현 방안 마련, 적극적 실천이 절실하다.

오늘날 지구촌의 세계인들이 한글과 한류, 그리고 한국학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이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치른 폐허 위에서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저력과 창의적 역량, 그것을 내재한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를 성급하게 이해타산적인 상업주의와 연결시키기보다는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했던 우리 민족의 경험과 지혜를 지구촌 시민들과 함께 나눈다는 정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한글과 한류가 지구촌의 우월한 그 어떤 문화로 평가받기보다는 다양한 세계의 개별문화 가운데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데 기여할 수 있는, 특이성을 지닌 소중한 문화로 인식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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