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대응체계 사전예방 대책과 조치 중요
김동섭(한림대 보건과학대학원 객원교수)
코로나19와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 2020년 2월 첫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한 후 3년여 째 코로나19 변이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 ‘델타 편’에 이어 ‘오미크론 편’으로 넘어가면서 누적 감염자는 185만 명에 육박했다. 감염자 숫자가 세계 229개국 중에서 8위를 기록할 정도다. 국민 셋 중 하나가 코로나에 감염된 셈이다. 사망자는 2만4000명대이다. 그나마 감염자에 비해 사망자 비율을 말하는 치명률은 낮아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행히 6월 하순 들어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코로나19가 끝나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올가을에 다시 코로나19가 재유행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아마 그때는 ‘파이(π)’ 혹은 ‘로(ρ)’ ‘시그마(σ)’로 이름 붙은 새로운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오미크론을 대체해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새로운 코로나 변이에 대비해 고령자에게는 4차 백신을 맞고 의료진에게는 치료제를 적극 처방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백신을 맞고 재감염되는 돌파 감염 숫자가 만만찮고, 백신 안전성을 들먹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코로나19의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아니다. 새로운 감염병이 또다시 우리를 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세계 20여 개 국에서 발생한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도 이미 국내에 상륙했다. 언제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를 습격할지 모른다. 우리는 이미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란을 5~6년마다 치렀다.
국가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국방안보’보다 모든 국가가 신종 감염병과 벌이는 ‘보건안보’전쟁의 시대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얼굴없는 똑같은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감염자를 막기 위해 나라마다 문을 걸어 잠그는 봉쇄정책을 편다. 식당의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문 닫거나 휴업하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경제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모임이 통제되고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남녀의 만남 횟수도 줄고 날짜를 잡은 결혼식마저 연기돼 혼인 건수가 부쩍 줄어든다. 감염 우
려 때문에 임신조차 꺼려 출산율도 뚝뚝 떨어진다. 코로나 사망자가 늘면서 미국, 프랑스 등 많은 국가들은 전체 국민들의 기대 수명 하락까지 경험했다.
방역 초기 한국형 K방역 체제 코로나 확산 방지 한몫
이 같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이기고 있는 것일까. 지난 2년여간 정부의 대처 과정을 뒤집어 보면 결과론이지만 따져보아야 할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검토와 반성을 한 뒤에야 새로운 감염병 대처 방안이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코로나 발생 초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왔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겪으면서 쌓아온 대응 능력이 밑바탕이 되었다.
체온 재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은 거의 생활화됐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감염자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추적 조사는 물 샐 틈 없다. 전국에 널리 퍼진 cctv 영상을 통해 감염자의 동선을 확인하고, 접촉자를 찾기 위해 신용카드의 사용처 확인, 휴대전화 위치 추적이 동원된다. 개인 사생활 침범과 인권 침해라는 윤리적 논란도 불거질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공동선이 우선되는 사회분위기로 개인의 인권 논란은 묵인됐다.
이 같은 코로나 대응 전략은 수비형 방어전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잠재적 감염자를 찾기 위해 선제적으로 PCR 검사를 하는 공격형 전략도 이어진다.
‘빠른 진단(Test)-빠른 추적(tracing)-빠른 치료(Treatement)’라는 3T를 중심으로 구축된 한국형 ‘K방역’체제가 코로나 확산을 막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이 같은 K방역 명성에 금가기 시작한 것은 2020년에 접어들면서다. 코로나19가 2년여 동안 4차 유행까지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강한 방역정책에 지쳐갔다. 사적 모임까지 인원을 제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과 중지를 반복했다. 2주 단위로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4주, 8주로 ‘더 굵고 길게’ 연장되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불만은 커져갔다.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가 식당보다 더 밀폐된 공간인데 왜 자영업자의 식당만 통제하느냐” “수백 명의 노조 시위는 내버려 두면서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시위는 왜 통제하느냐” “광복절이나 개천절 보수진영의 시위는 휴대전화 위치추적까지 하면서 불법으로 내몰고, 진보진영의 시위는 방치한다. 이념에 따라 선별 처리하는 것 아니냐”
이런 정치방역 논란은 한 달 뒤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시기와 맞물리면서 더욱 커졌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불만을 외면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결국 오미크론 유행으로 하루 10만 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해 위태롭던 2월 중순에 전격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시행됐다. 오미크론이 이전의 델타변이보다 덜 치명적인 ‘약한 놈’이란 기대에 한 가닥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3월 17일 하루만 62만 명이라는 엄청난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다. 코로나 사망자도 3월 8172명에 달해 3월 전체 사망자가 통계청의 한 달 사망자 역대 최고치인 4만4482명을 기록했다. 2022년 상반기만 2만 명가량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2021년 말까지 5563명이 사망한 데 비하면 전례 없는 사망자 폭증이었다. 화장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장례를 사흘이 아니라 닷새, 엿새 만에 치르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한 달여간 ‘장례 전쟁’까지 치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감염자와 사망자 급증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런 대규모 감염 태풍이 지나간 뒤인 4월 18일 정부는 2년 1개월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폐했다.
2020년 1월 첫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정부의 대처 과정을 돌이켜보면 결과론적이지만 안타까운 장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백신과 치료제 확보 여부다. 감염병과의 전투는 바로 백신과 치료제라는 무기 없이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2021년 7월에 4차 유행으로 감염자가 속출했을 때 우리는 치솟는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를 지켜만 보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신 접종자가 전체 국민의 24%에 그치고 치료제도 없는 형편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은 접종자가 대부분 50~70%였다. ‘백신’과 ‘치료제’가 부족했던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밖에 코로나19에 대항할 뾰족한 무기가 없었다. 2주 단위로 시행되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영업자들의 불만을 외면한 채 4주, 8주로 연장에 연장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 고작 2명만 밤 9시까지 먹을 수 있고, 결혼식 참석자도 49명까지만 인정할 정도였다.
우리는 왜 백신 계약을 서두르지 않고 방관했을까. 유럽국가들이 코로나 발생 초기인 3월부터 다국적제약사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선구매한 것과는 딴판이었다. 그 비밀은 2020년 6월 복지부장관의 국회 발언에 담겨있다. “국산 백신은 개발 목표가 내년 하반기이고, 해외에서 만약 백신이 그보다 먼저 개발되면 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일각에서도 “외국의 백신 접종 현황을 지켜보면서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토한 뒤에 구매해도 늦지 않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런 백신 주권론에 기반한 자신감은 백신 개발 성공률이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백신을 대량 구매했다가 포장도 뜯기도 전에 감염병 유행이 끝날 경우에 벌어질 후유증 걱정도 앞섰다. 비싼 약을 재고로 쌓아두면 누가 책임지겠냐는 현실론이었다. 그래서 당시 다국적 제약사들과 본격적인 백신 계약도 다른 나라들보다 뒤처진 2020년 12월로 이뤄졌고, 비싼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보다 이보다 가격이 훨씬 싼 아스트라제네카에 관심을 쏟았다.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산 치료제가 2020년에 개발될 것이라며 해외 치료제 도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국산화 의지를 불살랐다. 방향성은 맞지만 결과론적으로 ‘국민 생명 보호’보다 ‘국내 제약사 기술 능력’을 과신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환자가 증가하면서 우리의 보건의료 체계는 한계가 드러났다. 코로나 환자를 전담할 병원과 격리병상, 의료진의 태부족이었다. 그나마 격리병상 100여 개를 확보한 것은 메르스를 경험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초기에 하루 900명의 환자가 발생하면서 턱없이 부족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대형 민간 병원들에게 감염병 비상사태라는 이유만으로 병상을 무조건 징발할 수도 없었다. 시·도 의료원이나 보훈병원 같은 공공 병원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현실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공공병원 숫자가 전체 병원의 5.9% 수준밖에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부산이나 대구, 울산 등에 공공병원을 추가로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 초기에 확진자가 대량 발생한 상황에서 이들을 돌볼 의료진이 태부족이었다. 군에 입영할 신임 군의관을 동원해 의사 부족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간호사 부족은 메울 길이 없어 자원 간호사를 모집했다. 우리나라는 44만 명의 간호사 면허 소지자가 있지만, 실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20여만 명에 불과하다. 이런 유휴 간호사들을 유사시에 동원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이다.
코로나19로 역학조사관 중요성 절감
사망자를 줄이려면 위중환자를 돌볼 중환자실 확보가 중요하다. 우리는 특이하게 일반 병상 수는 세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가이다. 그러나 중환자 병상 확보나 중환자 전담 간호사 양성에는 소홀했다. 중환자 1명에 간호사 10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환자 전담 간호사를 양성하고 훈련시키는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형 재난에 대비해 중환자 전담 퇴직 간호사를 예비 인력으로 양성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교육하고 교육수당을 지급해야 인력 풀(pool)이 확보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역학조사관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다. 역학조사관의 기능을 감염자를 추적조사하는 단순한 조사관 역할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는 인구 10만 명당 1명씩 채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나마도 없는 지역이 허다한 이유다. 그러나 역학조사관은 지역별로 환자 발생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대비하는 ‘지역 질병 예측 감시 통제 사령관’ 역할을 맡겨야 한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전문화된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이 필요하다. 신종 감염병을 체계적으로 전담해 연구하고 진료하는 국제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역할을 하도록 체계를 잡아야 한다.
환경정책에 ‘사전예방의 원칙’이란 게 있다. 사람이나 환경에 심각한 피해가 올 가능성이 있다면 과학적 임상적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광범위한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감염병 정책은 이런 사전 예방 조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보다 이런 사전 예방대책이 오히려 더 싸게 먹히는 생명보험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