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좌절의 도쿄올림픽…정치적 의미와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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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8-02 15:55:07
  • 분류 : 자유마당

성공과 좌절의 도쿄올림픽정치적 의미와 과제는?

내각, 국민정서 역행하며 강행 추진해 난제 직면할 듯

 

김근식(CBS 전 정치부장)

 

 

우려와 불안 속에서 개막한 도쿄올림픽

지난 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 차례 연기됐던 일본 도쿄올림픽이 올해에도 취소와 강행사이의 곡예 끝에 개막됐다. 올림픽은 전 인류의 최대 스포츠 축제다. 당연히 전 지구촌이 축하하고 성공적인 대회를 응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은 악화된 일본 내 코로나 사태로 개막 이전부터 대회 진행, 폐막 이후까지 우려와 불안이 증폭되는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도쿄올림픽의 성공과 좌절, 향후 전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각적인 조명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개최국 일본, 지구촌 모두에게 올림픽의 과거와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723일 막이 오른 도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한차례 연기된 1년 전 상황보다 더 악조건이었다. 개최지인 도쿄의 경우만 해도 하루 확진자가 연일 1천 명 이상을 기록하는 등 최고단계인 감염 폭발(4단계)’ 기준을 훌쩍 넘었다. 선수촌 등 곳곳에서 감염자가 잇따라 나왔다. 일본 정부는 도쿄 지역에 올림픽 전() 기간과 겹치는 712일부터 822일까지 긴급사태를 발령했다. 상당 부분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고 도쿄 내 음식점 등은 오후 8시에 영업 종료를 해야 했다. 무관중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이후 처음이다. ‘1차례 연기·무관중이라는 명예롭지 않은 타이틀을 2개나 안고 출발한데다 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라 안팎에서 강하게 일었지만, IOC와 일본 주최 측은 이를 모두 외면했다. 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기승 속에서 무관중 경기로 1조 원에 달하는 입장료를 포기해야 했다.

 

경제올림픽의 정치적 의미

역대 올림픽의 역사를 살펴보면 연기 1차례와 취소 3차례가 있었으며 모두 전쟁과 관련돼 있다. 1916년 독일 베를린(19141차 대전으로 취소), 1940년 도쿄(1937년 중일전쟁으로 핀란드 헬싱키 대체 선정), 1940년 핀란드 헬싱키(19392차대전 전 발발 취소), 1944년 영국 런던(2차대전 중 취소) 등이다. 그리고 이번 도쿄올림픽은 비록 전쟁 시기는 아니었지만 코로나 사태가 전 지구촌에 퍼지며 특히 개최지인 일본은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전시 같은 비상 상황이었다.

올림픽 개최는 도박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강행된 배경에는 우선 돈이 중심에 있다. IOC는 경기 개최에 따른 미디어 중계권과 공식 스폰서십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인기 많은 하계올림픽은 1조 원 안팎의 천문학적 돈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IOC 금고로 들어간다. 도쿄올림픽은 주 수입원인 중계권 판매로만 264600만 달러(29000억 원)가 걸려 있다. 중계권을 확보한 미국 방송사(NBC)는 광고로 엄청난 수익을 낸다. 만약 올림픽이 취소됐다면 IOC는 거금을 포기해야 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개최 비용이 16440억 엔(168000억 원)까지 늘었다. 대회가 취소될 경우 위약금 등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그 외 올림픽이 취소됐을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살펴보면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받게 될 정치적 타격이 눈에 띈다. 일본의 코로나 상황으로 대회가 취소된 만큼, 스가 총리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스가 내각 입장에선 선택지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불가피성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쿄올림픽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줬다. 올림픽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선 올림픽의 진정한 주인은 스포츠를 통해 우의와 화합, 평화를 함께 나누는 인류 공동체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도쿄올림픽은 일본 자국민을 포함한 전 지구촌에 우려와 불확실성, 실존하는 위협 등 많은 상처를 안겼다.

특히 올림픽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선수들이다. 개최국이나 IOC가 아니다. 올림픽은 선수들에게는 일생의 로망이며 자신의 목표와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최고의 무대다. 최상의 기량 확보가 필수이고 이를 위한 선수들의 안전은 기본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이런 기본 프레임이 훼손된 대회였다. 건강의 위협을 느낀 일부 선수단이 출전을 포기할 정도였다. 코로나 기원과 관련한 중국 우한발 논란이 있듯 올림픽 이후 도쿄발 제2의 책임논란만 잠재워져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대회의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렸다. 여기서 선수들의 최상의 컨디션, 최고의 명승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물론 이번 도쿄올림픽은 정치색이 짙은 대회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래전부터 스포츠는 정치화를 불러왔다. 자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에 올림픽만한 이벤트가 없다. 지난해 9월 아베로부터 내각을 이어받은 스가 총리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가을 총선(중의원)에서 승리한 뒤 총리 연임이라는 정치적 포석을 깔아왔다.

하지만 그동안 스가 총리는 코로나 대응,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의 경제 회복 등에서 이렇다 할 리더십이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올림픽을 통한 한방을 기대했다. 또 부수적인 과실까지 계산했다. 올림픽조직위원회 홈페이지 지도에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인 양 표기하는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기(욱일기)를 선수단 유니폼의 이미지로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한국의 반발까지 염두에 둔 내부 결속을 노렸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한국은 일본과 IOC의 요구로 독도를 지도상에서 삭제했다.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라는 올림픽 정신을 존중한 데 따른 것이다.

 

스가 총리, 올림픽 강행한 이유

그런데 이번 도쿄올림픽은 일본을 향한 더 본질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세계 GDP 3위의 경제 대국이다. 그런 일본의 코로나 부실 대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차치하더라도 국제적인 명예 실추와 함께 지도층의 위기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을 관찰해야 한다. 먼저 일본 지도층에게는 일방적 직진 주의라는 과거의 병리 현상이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야마구치 지로(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가 5월 한국의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스가 정부의 올림픽 강행에서 2차 세계대전 패전 직전 일본 지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3가지의 공통점으로 통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첫째, 말을 바꿔 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감염 폭증에도 의료 붕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병상이 부족해 자신의 집에 격리되는 사람을 자택 요양이라고 한다. 이는 패배, 퇴각을 전진이라 한 대본영(일왕의 직속 기구이자 전시 최고 통수 기관)의 발표와 같다고 꼬집었다.

둘째, 기정사실의 굴복이다. 방역에 실패했고 올림픽 개최에 따른 상황 악화가 예견돼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군 지도자들이 2차 대전 중 중국 대륙 점령지에서 철수하는 것을 그동안 치른 희생과 비용이 허사가 된다며 반대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셋째, 광신의 정치다. 공허한 국가 목표를 위해 국민감정을 부추겨 국가의 위신을 지키고 자신의 야망에 연결시키는 것도 전쟁 때와 같다고 비판한다.

일본 지도부의 이 같은 의식구조를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는 일본의 내면에는 여전히 천왕의 나라와 신민(臣民)’만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후순위로 밀리고 합리성과 과학적 데이터가 들어갈 틈이 없게 된다. 야마구치 교수의 설명은 76년 전 2차 대전 중에 표출됐던 구시대 병리 현상이 악성 바이러스처럼 일본 정치 내부에 숨어 있어 있다가 다시 표면화됐다는 것이다.

20197월 아베 일본 내각은 우리 사법부의 일제 강제 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했다. 2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게는 소재 국산화 등 내부 체질 개선으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반면 해당 일본 수출 기업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도 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얼마 전 사설을 통해 “2년 전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강화한 것은 문제투성이의 악수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도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대책의 극치였다고 밝혔지만,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수출 규제 3년째를 맞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글은 아사히신문 하코다 데츠야 논설위원의 기명으로 실렸다.

 

코로나 악재 속 대회 개최로 시험대 오를 것

이번 올림픽은 일본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과오가 분명한데도 국민이나 선수단 등의 안전과는 별개로 자신들이 초기 설정한 목적과 방향에 따라 길을 가는 기정사실의 복종, 독선적 직진 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로 여겨진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한 이후 미소 냉전과 6·25전쟁 등 외부 환경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고공행진을 했지만, 미국이 설계한 플라자합의(1985. 엔화강세)의 늪에 빠지며 이후 지금까지 잃어버린 세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지도자를 바라보는 일본 국민들의 신뢰도 갈수록 식어가고 있다. 국제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올림픽 개막을 앞둔 지난달 14일 전 세계 28개국을 대상으로 도쿄올림픽에 관해 실시한 여론 조사를 발표했는데, 43%만 정상적인 개최에 찬성했고, 일본 자국민의 경우는 지지율이 최악(22%)이었다. 또 일본 관료 조직의 폐쇄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기정사실의 굴복과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사전에 충분한 물량의 코로나 백신을 계약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승인을 받았더라도 자국 내에서 반드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승인 절차로 시간 싸움에서 실패했다. ·의약품에 대한 일본의 철저한 안전 관리 의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코로나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화를 키웠다.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전시개념으로 긴급 승인 등 백신 번개 작전을 편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는 일본 관료의 유연성 부족을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에서 한 이유를 찾으면서, “닫힌 나라는 머지않아 되레 힘을 잃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이번 도쿄올림픽은 올림픽 자체의 성패를 넘어 일본의 미래와 관련한 성공과 좌절에서 중대한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안팎의 지적처럼 일본 지도자와 관료들의 폐쇄적 리더십, 이 같은 세계관을 뒷받침하듯, 지도자의 의식에 도도히 흐르는 국민=천왕의 신민이라는 낡은 공식이 도쿄올림픽에 깊게 투영됐다. 국가 간의 관계는 쌍방향 문제지만 오랫동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한일관계에 시사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일본은 안팎으로 포스트 올림픽의 숱한 난제에 직면할지 모른다. 도쿄올림픽의 교훈이 일본의 새로운 미래 담론을 이끌어 낸 전환기적인 역사로 기록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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