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DLS,DLF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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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1-04 16:23:48
  • 분류 : 자유마당

고액 자산가들은 왜 투자금을 날렸나 [박유연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DLS, DLF 사태로 금융투자업계
가 시끄럽다. 수억 원의 피해를
봤다는 사람이 줄을 잇고, 판매 은행
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당
할 전망이다. 도대체 DLS, DLF가 뭐
길래 세상을 뒤흔들고 있을까.
금리를 두고 누가 맞힐지 내기
DLS는 ‘Derivative Linked Securities’
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파생
결합증권’이다. 복잡한 이름 때문에
그럴싸해 보이지만, 단순화하면 한
마디로 ‘돈 놓고 돈 먹는’ 내기 게임을
금융상품화한 것이다. 내기를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축구에서 어떤
팀이 이기느냐, 경마에서 어떤 말이 1
등으로 들어오느냐 같은 것이다.
문제의 DLS는 ‘금리 연계형’이었다.
금리를 내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뜻
이다. 예를 들어 우리은행은 독일 국
채 10년물 금리 연계형 DLS를 팔았
다. 내기 구조는 단순했다. ① 앞으로
6개월 간 독일 국채 금리가 연 -0.2%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가입자가 투자 금액의 2%를 받는다. ② 반대로 6
개월 간 독일 국채 금리가 연 -0.2%
밑으로 떨어지면 가입자가 원금 손실
을 입는다. 금리가 많이 떨어질수록
손실 규모가 커진다.
상품을 만든 건 외국은행이었고,
투자자를 찾아 판매한 건 국내은행이
었다. 외국은행과 국내은행은 투자자
들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노리고 공동
으로 상품을 기획했다.
DLF는 DLS가 포함된 펀드를 뜻한
다. 개별 DLS를 찾아 가입할 수도 있
고, 다른 금융상품과 함께 DLS도 들
어있는 DLF에 가입하는 걸 선택할
수도 있다.
은행들은 DLS와 DLF에 대해 ‘웬만
하면 손실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정
기예금의 2~3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자 많
은 자산가들이 관심을 가졌다.
예금 금리가 연 1%대에 불과한 상
황에서 ‘6개월 만에 2%’는 일반 예금
의 3~4배에 이르는 수익률에 해당했
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주로 1억 원
이상 투자할 수 있는 고액 자산가들
을 대상으로 DLS를 팔았다. 방식은
‘사모펀드’로 했다. 소수의 몇 명에게
만 따로 연락해 파는 펀드를 뜻한다.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누구나 가
입할 수 있는 펀드는 ‘공모펀드’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은행이 적극적으로 홍보하자 DLS
판매금액은 곧 1조원에 육박했다.
금융감독원이 현황을 조사하니 전
체 DLS 투자자는 3243명으로 나타
났고, 그중 개인 투자자가 3004명으
로 거의 대부분(93%)을 차지했다. 개
인 투자자 대부분은 고령의 고액 자산가였다. 60대 이상이 1462명(48%)으
로 절반에 달했고, 70대 이상도 643명
으로 21%를 넘었다. 투자금액은 1억
원대를 투자한 경우가 66%(1988명)
로 가장 많았고, 2억 원대로 넓히면
83%(2517명) 비중을 차지했다. 이 투
자자들은 DLS와 DLF 가입 후 안정적
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기
회를 얻게 됐다고 만족해했다.
설마했던 마이너스 금리
투자자들이 DLS에 적극 가입했던
것은 독일 국채 금리가 연 -0.2% 밑
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
했기 때문이다.
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는 것
은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 게 아니
라 거꾸로 보관료 명목으로 이자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웬만
해선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게 은행
과 가입자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런 일이 실제 벌어졌다. 독일 국채 10
년물 금리가 8월 기준 연 -0.581%까
지 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는 독일 국
채 10년물을 사면 구입자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연 0.581%의 금리를
거꾸로 독일 정부에 내는 상황을 의
미한다.
이런 일은 경제 상황이 매우 불투명
할 때 벌어진다. 주식 등 모든 금융상
품의 수익률이 좋지 못할 때, 투자자
들은 은행 예금이나 국채 같은 안전
자산에만 몰리게 된다.
그러면 은행이나 정부는 매우 적은
이자를 지급해도 된다. 돈 내겠다는
투자자가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자를 아무리 낮춰도 투자자들이 계속
줄을 길게 서 있으면 급기야는 투자
자들에게 보관료 명목으로 오히려 돈
을 내라고 요구하게 된다. 투자자 입
장에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거액의
돈을 어디엔가 쌓아둬야 한다. 수백
만 원이나 수천만 원 정도면 금고 안
에 넣어두면 된다. 하지만 수백억 수천억 원을 굴리는 투자회사 같은 곳
은 보관이 불가능하다. 결국 울며 겨
자 먹기로 보관료를 내고라도 국채를
구입하게 된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
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만 배불려
현재 세계 경제 전체가 침체로 신음
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독일 같은 선
진국들의 국채 금리는 속속 마이너스
로 접어들고 있고, 하락폭은 계속 커
지고 있다. 그러면서 DLS에 투자한
사람들은 거액의 손실을 보고 있다.
독일 국채 10년물을 기준으로 -0.2%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내기를 했는데, 금리가 떨어지는 사
태가 일어나면서 내기에서 져 거액을
잃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특히 ‘금리가 많이 떨어질수록 손실
규모가 커진다’는 조항에 따라 수억
원에 이르는 원금 전체를 날린 투자
자들도 부지기수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렇게 투자자들이 날린 금액은 5000
억 원에 육박한다.
손실 부담은 오로지 투자자들에게
만 전가됐다. DLS와 DLF를 팔아치
운 은행들은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
은 것이다. 은행들은 처음부터 판매
금액의 1%정도 되는 수수료만 노렸
고, 손실이 얼마나 나건 은행들은 아
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상품
을 설계했다. ‘중개자’ 역할만 한 것이
다. 결국 모든 손실 부담은 투자자들
에게 떠넘겨졌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잃은 만큼의
돈은 누가 벌었을까. 즉 내기 상대방
은 누구였을까. 우리나라 DLS 투자
자들로부터 5000억원에 육박하는 돈
을 가져간 쪽은 우리나라 투자자들과
반대로 세계 금리가 마이너스 밑으
로 크게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금
리 하락에 베팅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었다. 이들은 DLS를 설계한 외국은행
을 통해 내기에 응했다. 이들이 정확
하게 누구인지는 파악하기 불가능하
다. 외국은행들이 우리나라 금융당국
에 협조할 리 없기 때문이다.
또 외국은행들은 정당하게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고 생각한다. 내기에
응해 손실을 입은 건 철저히 우리나
라 투자자들 책임이란 입장이다.
안이한 은행과 투자자들 합작품
DLS는 처음부터 불합리한 게임이
었다. 내기가 성립하려면 당사자 간
이익과 손실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내가 이겨서 100원을 얻는다면, 질 때
도 100원을 잃어야 한다. 그런데 DLS
는 이익에 비해 손실이 너무나 컸다.
투자자가 이길 때는 투자액의 2%를
‘고정적’으로 버는 데 그치고, 지게 되
면 원금 전체를 잃을 수도 있는, 말도
안 되는 내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음에
도 불구하고 ‘만기’가 6개월로 짧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주식, 비트코인,
부동산 같은 원금 손실이 있는 대부
분의 투자 대상은 만기가 없거나 매
우 길다. 그래서 투자 후 가격이 떨어져도 오를 때까지 이른바 ‘존버’가 가
능하다. 반면 DLS는 만기가 6개월로
매우 짧아서 이 기간에 손해를 보면,
원금을 복구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렇게 위험한 상품이라면 판매한
은행들은 구조와 위험성에 대해 제대
로 설명했어야 했다. 투자자들에게
‘불합리한 내기 구조를 갖고 있으며
내기에서 패배할 경우 매우 큰 손실
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은행
들은 ‘원금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정
도로 매우 형식적인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소
극적인 주의만 주고 넘어간 것이다.
심지어 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도 20%나 됐다.
특히 은행들은 수수료 수입에 집착
한 나머지 상품 출시 과정에서 내부
반대를 무시했고, 심의 기록까지 조
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들은 새
로운 금융상품이 들어오면 팔아도 되
는지 내부 선정위원회를 통해 자체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일부 위
원이 평가표 작성을 거절하자 상품
출시 찬성으로 임의 기재하거나, 반
대하는 위원을 교체한 후 찬성 의견
을 받은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출시 이후에는 은행 본점 차원에서
일일 단위로 실적 달성을 독려하고,
직원 평가 항목에도 넣어 판매를 사
실상 강요했다. 이에 따라 어떤 영업
직원들은 ‘원금 손실 확률 0%’라는 문
자 메시지까지 발송하며 상품을 팔아
치웠다. 본점 차원에선 ‘손실 확률이
극히 적다’는 점을 강조해 판매한 사
례를 우수 전략으로 선정해 다른 영
업점에 전파한 사례도 있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는 뒷전
이고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혈안이
됐던 은행들의 탐욕스러운 행태가 숨
어 있었다”고 비판했다.
재발 방지 대책들
물론 가입자들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다소 높은 수익률
에 눈이 어두워, 위험을 제대로 살피
지 않고 가입한 사실 자체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
도 합리적인 의심이 있었다면 판매
직원에게 세세하게 위험성을 물어,
손실 가능성을 따져 가입할지 여부를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확인을 소홀히 했고, 결국
큰 손실을 입었다.
특히 DLS 투자자 대부분이 금융상
품 투자 경험이 많은 자산가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그저 직원이 권하는 대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험으로 위
험성을 알아챘을 수 있다. 단지 ‘설마
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가겠느냐’며
안이하게 생각하고 상품에 가입했을
뿐이다. 은행들이 과도하게 상품을 팔
아치운 부분은 분명 있지만 투자자들
스스로 안이하게 판단한 책임은 분명
히 져야 한다.
DLS 사태 이후 금융상품 투자 시장
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8월 ELS(주가연
계파생결합사채 ELB 포함) 발행 금액
은 5조 275억 원으로 7월 대비 35.2%
감소했다. 3월부터 7월까지 매달 7조
원 이상 발행된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당분간은 이런 충격
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
치기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
근 ‘투자 숙려제도’와 ‘고객 철회제도’
도입 등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고객
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고객중심 자
산관리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투자
숙려제도는 은행이 펀드를 판매할 때
가입 신청 마감일 며칠 전에 신청 접
수를 종료한 뒤 고객에게 마감일까지
투자를 실제로 할 것인지 돌아볼 시
간을 주는 제도다.
투자자 입장에서 마감일이 남아 있
으니 취소하는 게 가능하다. 나아가
고객 철회제도는 마감일이 지나서도
펀드에 가입한 지 15영업일 이내라
면 고객이 손해를 보지 않고 가입을
철회할 기회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
다. 또 은행이 투자 상품을 선정할 때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상품선정위
원회를 거치게 하고, 판매 단계에선
PB(자산관리가) 검증제도를 신설해
판매할 수 있는 상품에 차등을 두기
로 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은 사후약방
문에 불과하다. 앞으로 비슷한 일
이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회사, 투자
자, 금융당국 ‘공동의 주의’가 필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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