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확산을 위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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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2-01 13:41:06
  • 분류 : 자유마당

사회적경제확산을 위한 전략

일상에서 협력·연대 실천하는 관행 만들어야

이형순(전 부천시의원)

 

사회적경제는 고대 이집트는 물론 중세유럽, 무슬림 국가의 길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였지만, 근대적 의미의 사회적경제는 19세기를 전후해 등장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수단과 자산소유를 통해 계급이 나누어지고, 물질적 불평등 문제가 대두되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 것이 바로 19세기 이후의 사회적경제로 볼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당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초래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이나 상호공제조합을 만들었던 시대상황과 맞물려 등장했다.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등이 프랑스에서 법인으로 인정받으면서 사회적경제가 유럽 전체로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회적경제는 시장 중심의 경제체제 및 복지국가 시스템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시장 실패 및 정부실패의 대안으로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복지국가가 위기에 처하면서 유럽 몇몇 국가에서 사회적경제 조직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장 경제의 보완 또는 대체의 측면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대됐으며, 과거의 사회적경제는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독점적으로 공급했지만, 국가의 재정부담 가중, 시장경제의 위기 심화 등으로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확대됐다.

 

국내 사회적경제의 흐름

국내 사회적경제는 계, 두레, 품앗이 등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사회적경제는 일제강점기의 협동조합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19205월 소비자협동조합인 목포 소비조합설립을 계기로 다양한 유형의 협동조합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1937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대부분 자주적 협동조합운동은 강제 해산했다. IMF이후 대량의 실업사태 발생과 함께 사회적경제 관련 사업이 본격적으로 확대됐으며, 국민의 정부는 대량실업사태 극복을 위해 실업자들에게 공익성이 높은 사업의 일자리를 제공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공공근로사업을 실시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용불안과 실업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는 직접지원보다는 사회적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방안에 대한 관심 확대됐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국내에서도 세계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세계적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경제체제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사회적경제의 개념과 유형

사회적경제는 합의된 개념적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가운데 다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사회적경제 또는 제3섹터의 범주에 사회적기업을 한 영역으로 구분해 법적 실체를 인정하는 경향(벨기에, 핀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포르투갈)이며, 유럽의 사회적경제는 공적영역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거나 사적영역에 일임하기엔 불충분한 제반 사회문제, 즉 실업 또는 고용 불안정, 빈곤, 사회적배제 등을 효율적이고 민주적으로 해소하는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미국은 사회적기업이라는 별도의 법적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비영리조직이라는 포괄적인 개념 속에서 운영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으로 구분해 사회적경제의 구성요소들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국내 사회적경제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으로 구체화되며, 국내 사회적경제는 법·제도에 근거하여 그 범위가 규정되고 있다.

현재 입법이 추진 중인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사회적경제 관련 기업을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협동조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가 주관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의 구성요소별로 주관 부처는 다르지만, 주요 목적은 대부분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로 유사하다. 사업대상은 사회적기업과 자활기업은 저소득층 및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협동조합 및 마을기업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에 한국에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당사자인 주민들로 구성된 사회적경제기업과 그들 간 네트워크의 숫자가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수준으로 증가했다. 필요를 가진 당사자들이 자립적으로 해결하고자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움직임이 그만큼 확산됐다는 방증이다. 특히 경제활동의 주체가 다양해졌다. 자활공동체 시절에는 주로 저소득 취약계층으로 한정돼 있던 참여자들이 이제는 일반기업의 퇴직자나 청년, 주부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무엇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기업의 소유자 내지 경영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민간 네트워크들이 조직되면서 지역 단위에서 민과 관이 함께 협의하는 회의체도 상설화됐다. 당사자 조직들의 네트워크 활동이 활발한 곳에서는 지자체가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민관거버넌스 구성에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시민들의 인식도 변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경제,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게나마 사회적경제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과 공감대가 자리 잡게된 것이다. 또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이 조금 낮아지는 효과도 나타났다. 사회복지체계가 사회적경제를 통해서 혁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들도 생겼다.


이런 변화들이 나타난 데는 법을 제정하고 지원제도를 운영해온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국민 인식의 변화도 전국으로 뻗은 제도화의 경로를 타고 좀 더 수월하게 일어난 면이 있다. 사회적경제가 정부 국정과제의 하나로 다루어지면서 관련 정책들이 국민생활에 미친 파급 효과는 제도화 이전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광범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대안

사회적경제가 단지 일자리 정책의 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복원되는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가 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래사회에 대한 발전전략으로서 사회적경제의 장기적 비전과 단계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당사자 조직이 대등한 동반자로서 실질적 의미의 협치가 일어날 수 있는 민관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겉치레에 불과한, 그리고 민간 참여자가 정부관계자의 보조자 내지 협력자에 머무는 작금의 구조는 개혁돼야 마땅하다.


만약 (청와대부터 지자체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경제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단위에서 민간의 의견과 실천의지가 충분히 반영된다면 지금의 많은 문제들이 풀리고 진척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사회적경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 제도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순환근무제에 따른 잦은 인사이동으로 사회적경제 담당자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지자체와 사회적경제기업들 간의 관계가 수년 씩 제자리에서 맴도는 경우들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관 제도나 개방직 공무원 채용제도의 적용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민간의 당사자 조직은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서 힘이란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에서 오는 권위와 조직의 세력이란 차원을 모두 포함한다. 오늘날 사회적경제의 기본정신과 철학을 잊고 관성에 젖어있는 조직들이 적잖게 생겨난다. 협동과 연대의 원칙은 아랑곳없이 영리기업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제 사회적경제의 근본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과 자정(自淨)의 움직임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조직은 도덕적 정당성을 갖기 어렵고 결국 정부와의 협상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성찰과 자정의 운동은 누군가가 다중을 향해 잣대를 들이대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에 공감하는 당사자 그룹이 자발적으로 조용히 실천해나감으로써 눈덩이 커지듯 서서히 확산되는 운동이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정부의 실천 과제는 민간이 아무리 말로 설득하고 촉구해도 그것만으로는 정부를 변화시킬 수 없다.


당사자 조직들이 실제로 힘을 갖고 힘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협력과 연대를 실천하는 관행을 만들어내야 한다.

첫째, 지역에서 유의미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모델 혹은 사례를 사회적경제 조직들끼리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확산해야 한다.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분석하는 워크숍은 연대의 당위성 때문에 목적의식적으로 조직돼온 종래의 회의체들에 비해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연대는 사업을 매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정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사업을 함께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키워야 한다. 이러한 사업연합체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종업체끼리 모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큰 사업(예컨대, 공공재정 사업)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서 다양한 업종의 사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셋째, 이상의 연대는 조직유형 간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기업들끼리, 혹은 협동조합들끼리의 연대가 아니라, 조직유형이나 소관부처에 상관없이, 오로지 사업적 필요성에 의해서 결합되는 관계여야 한다. 물론, 같은 조직유형들의 협의체도 필요하긴 하지만, 협력의 대상을 사회적경제 조직 전체로 열어놓을 때 비즈니스 측면의 실질적 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지역에 사회적 금융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앞으로 민간에서 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정부가 계획 중인 전국 차원의 금융 전달체계만 바라보지 말고, 기존의 금융기관들 가운데 각 지역에서 사회적 금융의 중심 노릇을 할 곳을 찾아서 지역의 독자적인 자조기금 체계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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