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그린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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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9-01 13:48:33
  • 분류 : 자유마당

기후위기와 그린스완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정책

 

김진원(헤럴드경제 기자)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급격하게 퍼진 해시태그(#). 50일 넘게 이어진 장마와 폭우 때문에 벌어진 물난리에 42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8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피해 규모가 막대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방자치단체도 18곳이다. 하천이 범람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도 1500건이 넘게 발생했다. 또 농경지 곳곳이 물에 잠겨 전체 벼 재배 면적 가운데 3%가 침수됐고, 축산농가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 180만마리 이상, 돼지 6000마리 이상이 홍수에 휩쓸려 폐사했다.

 

폭우 이어 폭염한반도의 3분의 1은 여름

기후위기의 여파는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는 피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100여년 동안 한반도의 연 강수량은 매년 평균 1.63씩 증가했다. 기온 역시 꾸준히 높아졌다. 서울의 여름은 1910년대 10년 동안의 평균 94일에서 2010년대 들어서는 평균 131일로 늘었다. 이미 한 해의 3분의 1이넘는 38.3%를 평균기온 20도 이상인 여름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온이 오르는 경향은 대도시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 지구적으로 100년간 기온이 0.75도 오르는 동안서울 등 국내 6대 도시는 2배가 넘는 1.8도나 올랐다. 이에 따라 2050년이 되면 한 해 폭염일수는 최대 50일까지 늘어나고, 폭염 사망자 수도 250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거 사과로 유명했던 대구는 더 이상 사과를 재배하지 못하는 도시가 됐다. 논에서 잡초를 먹는 우렁이를 키우는 농가들은 우렁이 농법을 포기한다. 따뜻해진 겨울 때문에 월동에 성공하는 우렁이들이 생겼다. 잡초뿐 아니라 벼까지 파먹을 정도로 우렁이 개체수가 늘어나 더이상 논에 우렁이를 풀어놓을 수가 없다. 강원 동해안 지역의 황태덕장엔 겨울에 눈 대신 비가 내린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한여름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쓰고 더위 속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폭염 대비 건강관리 매뉴얼에 나와 있는 폭염취약계층은 흔히 말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노인,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 어린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기록적인 폭염을 겪었던 2018년에는 국내에서 48명이 폭염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병원 응급실을 통해 운영되는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바탕으로 한 집계다. 현실에서 폭염으로 인명 피해를 입는 인원은 이보다 3배 이상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서울의 무더위쉼터 3769개소 중 77%를 차지하는 경로당의 절대다수가 문을 닫은 점을 고려하면 올해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폭우도 폭염도 모두 거대한 규모의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실제 시민들이 체감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분위기가 만연한 것 역시 사실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 공감대 그린 스완(green swan)’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노력은 한국의 상황에 국한된 것일까. 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있다. 녹색백조를 뜻하는 그린스완(green swan)’. 이 말은 2007년 금융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언급한 블랙스완(black swan)’에서 파생됐다. 200여년 전 유럽인들에게 백조는 흰색이었다.


하지만 1697년 호주에서 검은 백조, 흑고니가 발견됐다. 경험칙을 무너뜨리는 사건이었다. 탈레브는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것으로 블랙스완을 묘사했다. 여기에 기후위기를 얹은 것이 그린스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데다 기나긴 장마와 기록적인 폭염까지 겹치면서 녹색 백조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이 아닌 바로금융 분야에서다. 그린스완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경제·금융위기를 뜻한다. 올해 초 각국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BIS)그린스완이라는 용어를 꺼냈다.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위기는 단순히 블랙스완으로 설명하기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BIS1그린스완: 기후변화 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안정성보고서를 발표했고, 4개월 뒤 그린스완 2-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효율성과 복원력에 대한 성찰을 내놨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는 불확실한데도 야심 찬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기후위기, 물가안정 저해하고 생산성 떨어뜨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수요·공급에 영향을 미쳐 통화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물가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봤다. 공급 측면에선 농산물·에너지 가격에 급격한 조정이 일어나고 변동성이 커지기 쉬워진다. 기후변화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는 아직 적지만 자연재해와 극단적인 기후가 나타난 이후 식품 가격이단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기후변화는 경제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기후변화로 자원 부족해지거나 혹한 또는 폭염 때문에 바깥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 생산량이 떨어진다.


기후변화는 금융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가 금융기관으로 파급된다. 예를 들어 폭우로 침수된 자동차가 많아지면 자동차 손해보험의 손해율이 커진다. 올해 기록적인 폭우 이후 4대 손해보험사가 집계한 침수 차량은 7036대다. 2018275, 2019443대의 20배다. 손해추정액도 707억 원으로 지난해 24억원의 30배에 달한다. 폭염 때문에 농산물에 피해가 생기면 농·식품산업 대출·보증·융자 등 상환이 늦어진다. 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위기 역시 그린스완으로 분류된다. 코로나19도 생태계 변화와 관련이 있고, 경제적 피해 말고도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다. 팬데믹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 보험체계를 구축하고,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대비해 완충자본을 쌓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린뉴딜은 그린스완 막을 수 있을까

한국의 금융당국은 그린스완 대비에 나섰다. 금융위는 지난 813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첫 회의를열었다. 금융위는 그린스완을 언급하며 기후변화 리스크가 현재화되는 시점과 영향의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는 일인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금융위는 기업들의 환경 관련 정보 공시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금융투자에서 기후변화 리스크가 고려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를 활용한 책임투자가 늘고 있지만 국내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금융당국은 한국판 그린뉴딜사업을 통해 녹색산업투자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정책금융기관이 선도적으로 녹색투자를 확대한 뒤 민간이 참여하도록 유인체계를 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행보를 두고 의문의 시선도 나온다. 석탄화력발전의 확대가 대표적이다. 한국전력은 강원 삼척과 강릉, 고성 등에 7기의 추가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석탄화력발전 퇴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제사회와 정반대 행보다. 유럽연합(EU)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좌초자산으로 지정해 143개 화력발전소 폐쇄를 공식 발표했고, 180여개를 추가로 폐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더욱 명확한 목표 설정과 추진 필요한 시점

EU는 그린딜을 통해 2050년 넷제로(Net-Zero)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40%에서50~55%로 상향 조정한다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은 2030년 전력생산부문 탄소 배출 제로, 2050년 넷제로 달성을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밝힌 그린뉴딜의 목표는 탄소중립사회의 지향이다. 실행 방안은 2017년에 발표한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이다. 여기에는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온실가스 감축을 할 것인지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이라는 메시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현재 한국에선 그린뉴딜이 기후위기 시대 생존 정책이라는 절박함을 현장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고온다습한 여름철 기후 때문에 에어컨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제안이 대표적이다. 대도시 여름철 에너지 사용량의 절반이 넘는 58%가량은 건물에서 소모된다. 햇빛 반사율과열 방사율이 모두 높은 밝은색 도료로 건물 지붕이나 옥상을 덮어 온도를 낮추는 쿨루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힘을 받지 못했다.


서울로 한정해 적용 가능한 모든 건물에 쿨루프를 도입할 경우 건물 온도를 평균 2도가량 낮추고, 100당 연간 1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도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두고 벌어지는 정부와 지역 주민 간 갈등도있다.


그린뉴딜의 이름으로 모아 놓은 각종 사업과 정책, 기술, 지원 등은 하나로 연결되지 않고 불협화음을 낸다. 그린뉴딜을 통한 기후위기의 극복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전달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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