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의 對한반도 정책과 우리의 대응방안
‘가치기반 국제주의 추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새로운 계기로 만들어야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바이든의 ‘가치기반 국제주의’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미국 국내외 여러 정책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시 영향권이다. 그러나 대외정책 차원에서 볼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기조가 구조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인 자유주의 국제질서 기조의 근간이 변화된 것은 아니었으며, 아시아 외교안보정책도 큰 틀에서 지속성을 견지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전략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으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각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 및 참여 국가를 확대한 쿼드 플러스(Quad plus)까지 논의되고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가치사슬(GVC, gloval value chain)을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경제번영네트워크(EPN, Economic Prosperity Network)의 형성을 도모했다. 또한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를 구성해 세계 5G통신망 분야에서 화웨이와 ZTE 등 중국산 제품의 퇴출을 시도했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핵심 쟁점인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와 미국의 대 중국 견제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미국의 2/3에 달하며, 코로나19 사태로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직면했던 역사상 가장 버거운 경쟁상대에 해당하며, 대 중국 견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 이견이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미국의 대 중국 견제가 트럼프 행정부보다 오히려 더 정교해질 것이며, 국제기구 및 동맹과의 연대를 활용함으로써 중국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바이든 당선자의 대외정책의 핵심은 ‘트럼프식 고립주의’와 반대되는 ‘가치기반 국제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이익의 관철을 위해 동맹에 대한 압박은 물론 ‘적과의 동침’도 가능한 대외정책 기조를 견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직후 시진핑 주석과 친분을 과시했지만 이후 대중 강경책으로 선회했으며, 2017년 거친 언사를 주고받았던 김정은 위원장과는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바이든 당선자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상이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당선자의 대외정책의 기조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2020년 3/4월호 기고문 ‘왜 미국이 다시 이끌어야 하는가’(Why America Must Lead Again)에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바이든 당선자는 기고문에서 취임 첫 해 민주주의 세계 정상회의(global 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는 미국이 주도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국제연대를 추구하겠다는 의도이다. 기고문 곳곳에는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정권들에 대한 경계심이 드러나 있으며, 당연히 이들 국가들은 민주주의 세계 정상회의의 초청 대상이 아닐 것이다.
현 시점에서 바이든 당선자에게 김정은 위원장은 TV토론에서 언급했던 ‘폭력배’일 뿐이며, 중국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도전 세력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견고한 한미동맹과 아울러 북한을 견인해내고 중국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한국 외교의 현실이다. 바이든 당선자의 가치기반 국제주의는 한반도에도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한반도정책 전망
바이든 당선자는 1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을 “인도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의 린치핀(linchpin)”이라고 언급했다. 린치핀은 핵심축을 의미하며 그 만큼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의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우선 안보적 관점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 될 것이며,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 문제와 주한 미군의 규모 및 철군 논란은 자연스럽게 종식될 것이다. 주한 미군에게 제공되고 있는 토지 및 시설 등을 비용으로 환산할 경우 한국은 이미 충분한 주둔 비용을 분담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인 NATO 회원국과 일본보다 GDP 대비 두 배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징집제를 통해 60여만의 상비군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군사력순위(Global Fire Power)가 발표한 2020년 한국의 군사력 순위는 세계 6위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했던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유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대 중국 견제 안보정책이 지속될 것이며, 주한 미군은 중국에게 부담이 되는 미국의 전진배치 전력에 해당한다. 따라서 주한 미군의 철군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며, 대규모의 감군 가능성도 희박하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한 큰 틀의 구조조정이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주한 미군 역시 일정정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어느 경우든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아시아에 전개하고 싶어 하는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와 이미 배치된 사드 포대의 개량 및 확장 등 주한 미군의 전략적 능력을 증대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쿼드 플러스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할 개연성도 있다. 모두 대 중국 견제 안보체제의 구축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안들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전략은 과거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정책과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핵 문제는 과거와 달리 개발단계를 넘어 북한이 사실상 ‘핵능력 국가’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이미 임계점을 상회했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캠프의 외교정책 고문인 브라이언 매키언 전 국방부 수석부차관은 지난 10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과 매우 다르지만 오바마 대통령도 아니다… 우리는 2017년 1월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언급한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싱가포르 및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과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을 포함해 비핵화 협상은 이미 북미 양자관계로 재편된 상태이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북미 양자협상의 틀을 주축으로 경우에 따라 주변국의 협력을 견인하는 기조를 견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는 북핵 4자 또는 6자 회담의 역할은 제한적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로부터(top down)의 협상을 통한 빅딜형 북미 비핵화 협상방식을 선호한 반면 바이든 당선자는 밑으로부터의 협상을 통한 스몰딜을 지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당선자는 지난 10월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김 위원장과 만날 의사 여부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그(김 위원장)가 핵능력을 축소하는 데 동의하는 조건”이라고 대답했다. 핵 없는 한반도는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하며, 핵능력 축소는 단계적 스몰딜의 가능성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단계적으로 핵능력을 축소하면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란 핵 합의(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JCPOA)를 도출한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유사한 형태의 협상안을 북한에 제안할 개연성도 있다. JCPOA는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제재해제와 평화적인 핵 이용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북한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이다.
바이든 당선자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하고도 확실한 의지 표명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보다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의 태도변화를 강제하는 ‘전략적 압박’ 정책을 견지할 개연성도 있다.
우리의 대응방안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은 우리에게 기회와 도전요인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동맹과 적의 구분이 없는 ‘트럼프식 일방주의’의 위협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재확인될 것이며, 제반 불확실성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공조체제의 강화는 북한 비핵화와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하는 우리의 대북·통일정책 구사에도 긍정적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국가전략과 이해관계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미국의 대 중국 견제정책의 지속 및 심화가 예상되며, 특히 바이든 당선자의 ‘가치기반 국제주의’ 대외정책 기조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치기반 국제주의’는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를 통해 비 민주주의 국가와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써 인도 태평양에서 안보와 경제 양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이 겨냥하고 있는 명시적인 대상은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10월에 제19기 5중전회를 개최해 쌍순환(雙循環·dual circulation)전략을 채택하고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한 상태다.
미국은 한국의 핵심 동맹이며 한미동맹은 향후에도 상당기간 양국의 국가이익에 기여할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 진영과 접촉면을 다방면으로 확대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중국을 배제하고 한국 경제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며, 북한 비핵화와 중장기 통일 로드맵의 구현을 위해서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양자택일형 외교를 지양하고 철저한 국익우선의 외교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간 신뢰의 형성과 함께 지속가능한 남북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한반도의 외교안보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새로운 계기로 만드는 창의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