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야 할 ‘우리 민족끼리’

  • No : 2250
  • 작성자 : 한국자유총연맹
  • 작성일 : 2018-10-17 17:03:35
  • 분류 : 자유마당

넘어야 할 ‘우리 민족끼리’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올해 들어 3번째 남북정상회담인 ‘9월 평양 정상회담’이 열렸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는 정치라는 예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면 세상을 보는 눈, 세계관이 바뀐다. 같은 사물도 달리 보인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북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2017년 60%에 비해 10.2% 포인트 상승한 70.2%로 나왔다. 최근 남북관계 변화에 대해서 ‘바람직하다’는 응답도 80%로 상당히 높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평화, 새로운 미래’를 외친 평양 공동선언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9일 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를 관람한 뒤, 15만 명의 평양시민들 앞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며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며 “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의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설에서 ‘민족’을 10차례나 사용했다. 자유나 평등, 민주가 아니라 ‘민족’이 키워드로 등장한 것이다. 아직도 ‘민족’과 ‘자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사람이 많다. 해방된 지 70년 이상 지났지만 ‘민족’과‘자주’가 우리의 한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외세에 의한 분단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한스러움이 지금까지 위력을 발휘하여 ‘민족의 자주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이런 염원은 한국 근대사에 대한 역사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통일사학을 주창한 강만길은 한국 근대사를 갑신정변·동학혁명·독립협회 활동·의병항쟁 등으로 근대화 운동과 주권수호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었던 제1기, 3·1운동·임시정부·무장독립운동·6·10만세운동 등이 주축을 이룬 줄기찬 민족해방운동이 계속되었던 제2기, 그리고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시련을 겪고도 근대화·공업화에 성공해가고 있는 제3기로 나눈다.


제1기는 국민혁명을 통해 국민주권체제를 성취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자율적인 근대화와 국민국가를 수립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이며, 제2기는 독립운동 과정에서의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방법론적 대립과 사상적 분열 때문에 해방 후의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기반조차 형성하지 못했던 시기이며, 제3기는 민족분열이 본격화하여 동족상잔을 겪고도 사상·군사·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극한대립을 보여 통일 민족국가 형성은 고사하고 분단체제가 굳어가는 시기다.


이렇게 보는 경우 우리 근대사는 19세기 후반기에 시작된 실패의 역사가 1세기를 넘어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성공한 역사로의 전환을 근대화나 민주화에서 찾지 않고 분단극복에서 찾는다. 따라서 우리는 일제시대에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민족사의 제1차적 과제였듯이, 해방이후 시대는 민족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민족사의 일차적 과제로 삼아야 할 시대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 위에 그는 해방 이후의 시기를 ‘분단시대’,‘통일운동의 시대’로 부른다. 곧 20세기 후반기는 ‘해방후의 시대’가 아니라 ‘분단시대’, ‘통일운동시대’로 불려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식은 분단체제를 기정사실화하여 그 속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경계하고, 그것이 청산되어야 할 시대임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청산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는다.


이것이 곧 역사 발전의 바른 노선이며, 역사적 당위라는 것이다. 이런 역사관은 당연히 민족과 자주를 높이 평가하고, 민족자주통일을 국정의 제1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통일 우선주의로 쉽게 연결된다. 이런 정치관을 가지면 남한내의 경제 발전이나 통합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자주민족통일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이나 집단은 정통이 아니라 이단으로 밀려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9월 평양공동선언’은 경제를 도외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역사관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공동선언에서 말한 경제가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민족에 봉사하는 경제라는 점에서 이런 역사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은 “남과 북은 상호호혜와 공리공영의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들을 강구해나가기로 하였다.


①남과 북은 금년 내 동ㆍ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하였다.


②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나가기로 하였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항목은 모두 북한의 경제 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북한경제를 우리 정도의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남한 경제를 제자리에 머물게 하고 북한 경제만을 끌어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경제는 냉엄한 자체 논리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에 ‘민족’을 품을 수 없다. 설사 경제가 ‘민족’을 품는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고 지속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냉정한 경제에서 ‘민족’이라는 감정적 언어는 퇴출된지 오래되었다. 공산주의 국가가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유도 경제의 냉정함 때문이다. 학문적 유물이 된 ‘민족경제’를 살리려면 두 정상은 경제 논리에 따라 지속가능한 교류와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남북의 경제 교류와 협력은 양국의 합의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선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어 국제 제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한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 없이는 남북교류가 정치적 동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마음은 바람 앞에 풀과 같아 언제 어느 방향으로 눕고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지속가능한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남한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로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는 경제 성장과 안보를 국정의 제1과제로 삼아야 한다.


경제성장이나 안보는‘민족감정’에 기대면 기댈수록 취약해진다. 경제와 안보를 우선 챙기는 것이 남북이 지속적으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첨부파일

네티즌 의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