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장기 집권 제도화와 러시아의 대외전략
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연해주 지역 이익 추구
홍현익(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러시아에 21세기판 차르가 등장하는 듯하다. 2000년부터 20년간 러시아를 통치하던 푸틴 대통령이 2024년과 2030년에 계속 재선되면 합법적으로 36년간 집권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개헌안이 확정됐다.푸틴은 2000년부터 4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 차례 맡았고 측근인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앉히고 4년간 실권총리로 수렴통치를 하다가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린 뒤 두 번 재선됐지만, 사실 2024년에는 은퇴하리라 예상되던 터였다.
놀라운 것은 민주적 다원화를 이룬 러시아에서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한 개헌이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추대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올해 1월푸틴은 임기 종료를 4년 이상 남긴 상태에서 안정적 통치를 위해 개헌이 필요함을 역설해 퇴임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러나 개헌안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그가 2024년에 다시 출마할 수 있도록 제청하고 그간의 대통령 이력은 무시한다는 내용을 개헌안에 삽입한 뒤 3월에 이를 압보적인 다수의 지지로 러시아의 하원과상원에서 채택하게 한 뒤 헌법재판소에서 확정지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의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려 국민투표를 실시해 결국 7월 1일 총투표자의 77.92%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인준 받았다.
고르바초프의 사회주의 개혁과 옐친의 다원화 정치체제, 사유화 및 시장경제 채택으로 권위주의 시대로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러시아에 이처럼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장기 집권이 가능하게된 이유는 무엇이고 푸틴은 향후 어떤 대외전략을 전개할 것인가를 살펴본다.
푸틴 장기 집권 제도화의 성사 배경
푸틴의 장기 집권 제도화를 가능하게 한 첫 번째 이유는 러시아가 강력하고 전제적인 통치자 시대에 발전과 영광을 누렸던 경험을 가졌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이반 뇌제의 전제정치, 표트르 대제의 서구근대화, 에카테리나 2세의 영토 확장, 나폴레옹을 꺾고 파리를 점령한 알렉산더 1세, 히틀러를 물리친 스탈린의 집단주의적인 전제통치 하에서 국력이 확장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광대한 영토의 나라에서 살아왔고 민주화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집권자의 권위주의적인 장기 통치에 반감을 갖기보다는 매우 익숙하다.
러시아는 의외로 수많은 전쟁을 겪었으며 외적의 침범으로 여러 차례 수난을 겼었다. 몽골의 침략을 받아 200년 이상 킵차크한국(Kipchak Khanate, 汗國)의 지배를 받았고,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편입되기도 했으며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당했을 뿐 아니라 2차세계대전에서 볼고그라드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가 나치군에 의해 유린당하고 가장 많은 전사자가 희생되었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에게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은 민주화가 아니라 국가를 지키고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며 강력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1991년 소련 해체 후 부활한 옐친의 러시아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체제 전환의 사회 혼란, 신속한 사유화의 진행과 엄청난 인플레로 도탄에 빠졌다.1990년대 10년 동안 러시아의 경제는 반토막이 났고, 연금 생활자는 기초생활도 어려웠다. 사회 전역에 부정부패가 횡행하고 러시아의 귀중한 자원과 에너지는 서방 자본에게 넘어가고 있었으며 방대한 영토는 소수민족과 지방 세력들에 의해 또 다시 분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일반 대중은 사유화로의 신속한 체제 전환이 서방의 종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했고, 러시아를 적으로삼는 나토가 소련 붕괴로 해체되기는 커녕 동구와 구소련공화국들에까지 확대되어 러시아를 포위·압박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런 맥락에서 KGB 요원으로 독일에서 근무한 푸틴이 옐친의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 FSB(KGB후신)국장을 거쳐 러시아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기용된 뒤 2000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우선적으로 국가안보를 중시해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체첸을 강력히 통제했고, 중앙의 통제가 소홀해지자 원심력적으로 독자 권력을 추구하려는 지방 호족들을 제압해 위계적인 중앙집권 질서를 수립했으며 외국 자본으로부터 자원과 에너지를 지켰다.
특히 두 차례의 대통령 8년 임기 중에 1990년대에 반토막난 경제를 정상으로 복구했다. 대외적으로는 구소련공화국들과의 연대 재구축에 나섰고 군의 현대화에 주력하면서 2008년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그루지아를 공격했으며, 동구를 넘어 러시아로 팽창해오는 나토에 강력히 대항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영토였지만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우크라이나에 넘겨주었던 크림반도를 2014년 러시아로 병합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사회 안정을 되찾았고 국가적 통일성을 지켰으며 소중한 국가 자원과 에너지를 지켰을 뿐아니라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국제 영향력을 유지했다. 특히 푸틴은 세계 최고 지도자들에게도 당당한 정상외교를 펼쳐왔고 구소련공화국들과 안보 및 경제 연합체를 운영하고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들과의 우호친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시리아 등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획기적으로 증진했을 뿐 아니라 중국과의 전략적동반자 관계를 활용해 국익을 증진하고 남북한 모두와 우호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가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하면서도 최대한의 정통성을 지키려 배려하는 것도 장기 집권을 돕는 것으로보인다. 반체제 인사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을 사실상 탄압하면서도 노골적인 폭력 행사는 철저히 은폐하고, 대중 시위를 무력 진압하지는 않으며 장기 집권도 법의테두리 내에서 도모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것 등이 이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기 집권제도화가 코로나19의 확산 시기와 중첩되기 때문에 이를 얼마나 잘 대처하고 극복하는가가 그의 장기 집권성공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러시아의 대외전략
수도 모스크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함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국가의 중심이므로 푸틴은 이 두 도시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부터 대외정책의 비중을 부여한다. 먼저 14개 구소련공화국들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그의 책무이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차별 대우받지 않도록 이들 정부와 우호관계를 관리하고, 나토가 회원국으로 편입을 원하는 우크라이나나 그루지아가 이에 가입하지 않도록 하며, 카자흐스탄 등 여러 국가들과 맺은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통해 호혜적인 협력을 도모하려 한다.
유럽국가들과의 관계가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이들과 우호관계를 맺고 독일 등 서유럽국가들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협력을 증진하며 범유럽 차원에서 공동 안보협력을 모색하려 한다. 특히 유럽국가들이 2014년 크림합병에 따라 가해온 제재를 해제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전략적 안정, 테러방지나 비확산체제 유지, 그리고 세계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력을 증진하려하고 있다.
미국도 지구상에서 30분 내에 자국을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러시아와의 협력은 회피하기 어렵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나 국내 여론의 반러 경향에도 불구하고 푸틴과 협력을 도모해왔다. 단지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양국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고 중국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독선적인 국제질서 운영은 이미 1996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에너지·교역 및 방산협력을 넘어 연합훈련과 우주협력으로 계속 발전하도록 하고 있다. 단지 양국은 공식적으로 동맹을 선언하는 것은 자재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관세 부과 등 무역 부분뿐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한 책임론, 화웨이와틱톡 등 중국기업 제재, 위안화 환율과 기술 절취에 대한 문제 제기,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팽창 견제, 대만과의 관계 증진, 인권문제에 대한 관여 등 전방위적으로 신냉전적 강경정책을 전개하고 있어,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양국은 정상간의 돈독한 신뢰를 기반으로 일대일로 사업과 유라시아경제연합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다자협력을 통한 공동행동으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 하고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한반도에서도 중국의 우선적인 관여를 존중하면서 작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남북한 모두와의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면서 시베리아 가스관의 한반도 건설,남북한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을 통한 낙후된 시베리아·극동지역의 물류기지화 등 대형사업추진을 통한 남·북·러 경협 증진을 모색하고 있다.
극동과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회복 및 이러한 경협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러시아는 중국과 협력해 북한의 안보 딜레마를 고려한 단계적인 비핵화, 그리고 제재 완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추동 등을 주창해왔지만 미국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해왔고 북한은 완강히버티고 있다.
한, 러에 ‘한반도 평화구축 기여’ 유도해야
그런데 미국의 국력이 월등하더라도 대러, 대중 강경책을 계속 구사하면 중·러가 단합해 대항할 것이므로, 미국 입장에서도 1970년대 닉슨의 이이제이 정책 구사차원에서 중국과 연합해 소련을 견제했던 것처럼 러시아와의 협력을 모색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할 것이다. 특히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남·북·러 경협을 지원하는 것이 지혜로운 전략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도 미국이 대북 협상에서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점을 설득하고, 북한에게도 대미협상에서 유연한 입장을 취해 북핵 문제에 진전을 이루고 제재를 완화하면서 남북·러 및 남북·중 경제협력을 통해 한민족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자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남북·러 경협이 늦어지더라도 정부는 한·러간 호혜적인 사업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한국의 국익을 증진하고 러시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에 기여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