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총리의 등장…일본의 대외정책과 미래는?
‘아베노믹스 2’ 지속하며 개혁 진행할 듯
이종국(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일본의 아베 전 총리는 건강상의이유로 8월 28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선언했다. 그동안 그의 건강문제는 7년 8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발목을 잡았다. 이러한 상황으로 집권 자민당은 권력투쟁이 시작되고, 바로 ‘스가(菅)· 니카이(二階) 동맹’의 움직임이 빠른 속도로 전개됐다. 제일 먼저니카이파는 후임 총리로 스가 요시히데를 지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파벌들도 서서히 스가 지지를 공식화하기 시작해 자민당 총재선거가 실시되기 전에 이미 5개 파벌의 지지가 선언됐다.
아베가 남긴 유산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의 총재로 자신의 국가관, 그리고 정권운영 방침을 제시하고 운동방침 아래 당을 운영했다. 2018년 아베 신조(安倍 晋三) 자민당 총재는 연설을 통해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강조하고 디플레이 탈각을 목표로 계속 경제중시정책을 전개했다. 그리고 적극적 평화주의를 전개하고,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의 수정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전쟁 포기 조항 삭제 등). 그러나 그의 약속은 부분적으로 달성됐고, 퇴임 선언으로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가 일본정치사에 남긴 유산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그는 자민당을 보수정당으로부터 우익정당으로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자민당은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보면 보수정당으로 평가되었고 우익정당이라는 이미지는 약했다. 그러나 자민당이 야당생활을 하면서 우익적인 요소를 정책노선으로 선택하면서, 그리고 우익 성향의 아베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우경화하기 시작했다. 즉 제2기 아베 내각이 탄생하면서 자민당은 이러한 우익성향을 유지하면서, 아베 전 총리 개인의 우익성향을 당의이미지화 시켜 정권을 운영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아베 내각은 출범 이후 자민당의 정책활동에 적극성을 보였다. 그동안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일본의 경기회복을 기치로 내건 아베 내각이었으므로 주로 과감한 금융정책, 신속한 재정정책, 민간투자 확대라는 성장전략 등을 실시했다.
그들은 이러한 자민당의 정책방향에 따라 경기회복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였다. 또한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자신들이 경제성장과 재정건전화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로 경제정책에 집중하는 선거전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침체에 빠진 일본경제와 사회에 파고들어 참의원 선거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처럼 자민당은 신자유주의와 구조개혁을 재가동시켜 일본의 경제의 성장을 추구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반면 아베 내각은 헌법개정,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위안부 문제 포함), 야스쿠니 참배, 집단적 자위권문제 등에서 분명히 전후 일본과는 다른 형태의 국가주의를 지향하는 대국주의 내셔널리즘을 국가의 목표로 하여 근린국가들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관방장관으로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스가의 역할은 아베의 정책이 잘 진행될 수있도록 총리를 보좌하고 정책조정을 하는 역할이었다. 아베 총리와 관방장관 스가의 업무에 있어서 호흡은 관방장관인 스가의 노력의 결과이었다. 서로가 아주 친밀했으며, 총리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업무를 잘 정리해서 보고하는 역할을 관방장관이 했다.
스가는 정권의 2인자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관료들과의 이해조정뿐만 아니라 집권여당과 조정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가야말로 빈주먹으로 출발해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베 총리가 사임을 선언하고 자민당은 새로운 총재를 선출하기 위해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스가 관방장관이 유리하다는 상황에서 치러진 총재선거는 스가, 기시다, 이시바 순으로 결정됐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는 정상적인 선거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아베의 사임이 결정된 이후라 역시 아베의 후광이 결정하는 선거라고 알려졌다.
아베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 문제로 점점 인기가 하락하는 추세에 있었긴 하지만, 총재선거 과정을 보면, 아베 총리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그리고 기시다(岸田文雄) 정조회장은 아베정책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정책전환을 주장하면서 경선에임하였으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스가 총리는 아키다현 남동부 출신으로, 요코하마에서 자민당 의원의 비서생활을 시작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38세에 요코하마의 젊은 시의원이 되어 8년 동안 시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1996년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그 이후 그는 4번 당선되었고 제1차 아베 내각 때 총무장관으로 입각했다.
제99대 일본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그는 인생경험을 중시하면서 아키다, 도쿄, 요코하마에서 의원 생활에 대한 경험담을 회고하면서 취미는 독특하게도 정보수집이다. 저녁시간을 2층집에 비유하면서, 18시부터 21시까지 약속 1건, 그리고 21시부터 23시까지 또 1건 등 연속으로 회식하는 약속을 유지해 나가는 정치인이었다.
물론 아침식사도 사람을 만나 식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그는 경제계, 학계 등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정보교환을 했다. 그래서 그는 아베 전 총리처럼와 같이 큰 이념을 주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스가 신임총리는 휴대전화 요금 인하 등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실무형 과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새로운 총리 스가의 역할은 아베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내각인사를 보면 21명의 각료 중 16명이 재임명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자민당 간부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먼저, 간사장인 니카이 토시히로(二階俊博)는 스가 정권의 창업자이다. 그는 앞으로 자민당 내의 단합을 이끌어 내면서 다가올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총무회장인 사토 츠토무(佐藤勉)는 스가의 총리후보를 요청하면서 스가 지지를 이루어낸 인물로, 야당과의 연결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회대책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셋째로 정조회장인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은 아베정권을 계승하면서 보조를 맞추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번 총재선거에 출마할 의향을 가지고 자기 사람 만들기를 서두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대위원장인 야마구치 타이메이(山口泰明)는 자민당을 지지하는 업계 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스가 진영에서 다케시다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번 내각 인사는 당 본부에서 열린 임시총무회에서 당 집행부의 인사를 정식으로 임명하였다. 총재선거에서 지지한 5개 파벌에게 주요 자리를 임명하였다. 스가를 일찍 지지한 니카이에게는 간사장 재임을, 총무회장에 아소파의 사토 츠토무를 맡겼다, 당 집행부는 파벌균형이라는 형태로 수습되었다. 특히 스가 총리가신경쓴 것은 당 4역의 임명이었다.
다음으로, 스가 내각의 정책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그의 인맥을 보면 구조개혁파가 눈에 뛴다. 즉 경제우선을 주장하는 정권운영을 강조하는 인물들, 그리고 관광정책이나 규제개혁, 금융 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스가 총리의 장점으로는 자민당에 한하지 않고 공명당이나 일본 유신의회와도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정권운영의 안정성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아베정책을 계승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동안 자민당이 목표로 하고 있던 경제정책들을 살펴보면, 일본에서 신자유주의와 구조개혁을 재가동시켜 일본의 경제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스가 총리가 자신의 주의와 주장을 어디까지 펼칠 것인지는 관심거리다. 그의 정책은 아베 노선을 그대로 계승하는 ‘아베노믹스 시즌2’를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구상하였던 몇 가지의 개혁을 진행할 수도있다. 먼저, 코로나 대책 관련 정책으로 코로나에서 디지털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므로, 행정의 디지털화는 디지털 청에서 일원화하여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휴대전화 요금 인하문제는 일본의 3대 휴대전화 회사가 과점상태에 있으며, 너무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체제 속에서 개혁을 유도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통신요금 40% 인하와 전파이용료도 수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후루사토 납세(고향을 위한 납세)를 통해 자신을 키워준 지방자치체에 은혜를 갚고 싶다는 기분으로, 개인주민세의 일부를 거주지 이외의 고향에 납부하는 구상이다.
앞으로 한일관계를 위한 노력
아베 전 총리 재임기간 동안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두 정상은 한일을 대표하는 이념형 지도자처럼 여겨지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아베는 일본의 국가주의를 대표하는 일본의회 등을 배경으로, 우리 문 대통령은 시민단체를 배경으로 일본의 과거사를 비판하는 정책으로 전개하였다. 그 결과 한일 양국은 역사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듯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결국 대립하는 정책을 전개했다.
한일 양국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19, 저출산고령화 문제, 지방재생 등과 같은 내정문제, 그리고 외교와 안전보장 문제에서 한·미·일 관계의 협력구조 모색이 당면 과제이다. 새롭게 탄생한 스가 내각은 아베내각의 정책을 계승만 한다면, 한일관계는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스가 총리는 위기관리의 능력과 정책조정의 달인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한일관계의 위기를 잘 관리하여 새로운 한일협력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