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적 세계질서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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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3-03 14:17:35
  • 분류 : 자유마당

중국적 세계질서와 한반도

 

이상만(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중국은 지난 200년 동안 역사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표적이 되었고, 20세기 중엽부터 자본주의 세계시장질서 편입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도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고, 그 자존심의 회복을 위하여 먼저 개혁개방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78년의 대전환이라 부르고, 이후 40여 년간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이룩한 중국의 국력성장을 목도하고 있다. 이후 세계인들은 중국황화론, 중국위협론, 중국패권론, 샤프파워(Sharp power)론 등을 이야기하며 중국의 부상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과연 중국이 세계사의 연장선상에서 패권의 주기에 따른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러한 관점은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는 것과 아직 세계패권을 장악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엇갈린 평가를 양산하고 있다.

중국의 21세기 목표는 중화민족의 부흥을 통해 세계패권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중간의 경쟁은 구조적 장기성을 띤 채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급속히 성장은 미중간의 세력전이(Power transition) 가능성이나 전략적 경쟁 격화에 대한 담론들을 끌어냈던 것이다. 앨리슨(Graham T. Allison)미래 수십 년 동안 세계질서의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언급하였다. 필자 역시 중국은 미국이 설계한 세계질서의 종속적 파트너가 아니며, 미국과 세계패권을 놓고 한판 자웅을 겨루어야 하는 경쟁국이 되었고, 지역적 또는 글로벌 수준에서 발생하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규칙 제정자로서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고 본다.

한국과 중국은 전형적인 개발독재형 근대화 전략을 추진하여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다. 중국은 글로벌 파워 2위에 한국은 12위에 위치하고 있다. 한중 양국의 글로벌 경제파워는 2019년 세계은행발표 기준 중국의 GDP141700억 달러로 세계 2위이고, 한국은 17천억 달러로 세계 12위다. 19세기 초 청나라 말기 중국의 GDP는 전 세계 GDP28%에 달하여 오늘날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비중을 능가하였다. 20197IMF 보고서 기준 GDP 구성은 미국 21.48조 달러로 전 세계 GDP24.5%이고, 중국은 14.17조 달러로 미국의 67% 정도이고 전 세계 GDP16.1%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총 교역량이 3천억 달러 정도이며, 향후 한국과 중국의 발전 잠재력을 고려하여 협력할 때 한중의 경제적 파워는 21세기 세계사적 영향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직 개방의 달콤함을 알고 있으나 그 동안 폐쇄경제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처녀지가 성장 동력의 배후로 자리집고 있기도 하다.

한반도 역시 지난 70년간 지속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민족공동체를 향한 전진이 계속되고 있다. 2018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물꼬를 튼 남북대화가 3번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5번의 북중정상회담, 1번의 북러정상회담, 3번의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성사될 수 있었다. 가히 한반도를 둘러싼 21세기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하겠다. 한반도와 중국과의 관계는 순망치한의 관계에서 송무백열의 관계로 진화할 때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21세기 초 세계질서의 구조가 개편되는 역동성 속에서 중국과 한반도의 위상은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세계정치에서 중국변수는 아주 중요한 상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가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국력이 중국을 능가할 수 있다면 국가의 자율성이 증대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중국과의 선의의 전략적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중국이 바라는 세계질서

 

중국의 과거는 세계 제일이었으며, 미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중국인의 꿈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대국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오늘날 중국의 부상이 널리 회자되는 이유는 역사와 규모, 그리고 부 등 모든 것들이 중국으로 하여금 동아시아의 자연스런 중심이 되고 그러한 역사적 유산과 함께 오늘날의 중국이 이 지역의 문제에 다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제국의 전통과의 연속성에 주목해야한다. 동서고금의 세계사에서 출몰한 제국들 가운데 특히 지금 중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에서는 세계사에 유례없이 전근대적 제국이 여러 국민국가로 분해되지 않고 그 본래의 성격을 유지한 채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조공체계로 이루어진 중국 중심의 지역질서가 해체되었다. 페어뱅크(Jonh K. Fairbank)는 소위 중국적 세계질서(Chinese World Order)’에 대한 이해 없이 당대 중국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즉 중국적 세계질서의 핵심은 위계성(hierarchy)’이며, 이것은 평등적 국가관계를 가정하는 서구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유교의 이념적 원리에 근거해 중국의 천자를 정점으로 각 국가들이 위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적 세계질서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역사상 실제로 중국 중심으로 편성되고 유지되었던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현실적 세계질서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역사상 실제와 상관없이 동아시아 세계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편성되고 유지된다고 인식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중국인의 관념적 세계질서를 의미한다. 현재 회자되는 중국몽(中國夢)’은 바로 후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과거 중국제국을 재건하려는 중국지도부의 의식구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는 제국 형식의 세계질서근대 주권국가 형식의 국제질서라는 두 가지 국제질서를 경험했다. 조공체계에 의한 중화세계질서정치적 평등을 구현한 민족국가체제의 두 형태다. 21세기 중국이 그리려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서구 주도의 현 국제질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조공체계와 화이(華夷)사상을 근간으로 한 전통적 중화 세계질서를 주변국에 요구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저항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현대 국제질서를 수용하면서 여기에 중국 특색을 정교하게 가미한 중국 특색의 현대 국제질서를 수립하려는 것이다. 즉 중국이 지향하는 미래 국제질서는 전통적 중화 세계질서처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과 속국의 관계이다.

중국이 구상하는 신형국제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천하질서 속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중국몽을 실현하는 것이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룩하겠다는 목적이며, 일대일로는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물질적 수단이다. “() 제국은 붕괴되었으나, 제국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윌리엄 커비(William C. Kirby)의 말처럼, 중국이 추구하는 천하질서는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오랜 세월 동안 각인된 역사적 의식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한 중화제국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질서가 전통적 중화 세계질서처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과 종속국의 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임은 자명하다.

중국이 바라는 21세기 신형국제질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중국이 그리는 신형국제질서는 각 국가가 주권국가로서 정치적인 평등은 유지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의 영향력 차이에 따른 등급 질서를 추구한다. 둘째, 미국 단일패권 체제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의 주도적인(dominant) 지위 확보를 통해 글로벌 차원에서의 중국을 포함한 다극체제 형성을 목표로 한다. 셋째, ‘등급 질서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주도적 지위와 관련해 주변국과의 동등한 수평적 관계가 아닌 서열이 존재하는 형제관계구축을 도모한다. 넷째, 현대 국제질서를 수용하며 유교적 성격의 중국 특색을 정교하게 가미한 신형국제질서를 통해 자유와 민주, 인권 등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공평과 조화, 포용, 공생, 의리관 등 유가적인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질서를 구축하고자 한다. 다섯째, 신형국제질서의 영향력 행사 및 확대를 위해 시혜적 왕도정치와 경제적 압박을 병행하는 특수한 외교 방식, 즉 중국은 미국과 같이 동맹과 군사력을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신 경제적인 수단 및 담론 주도권과 같은 샤프파워(Sharp Power) 자원을 활용함과 동시에 경제적 혜택 제공 여부로 타국을 압박하는 외교 방식을 추구한다.

글로벌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의 미래 구상은 함께 경쟁하는 다른 강대국들의 상호 견제, 그리고 수많은 중견국 혹은 약소국과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중국이 보다 덜 패권적이고 더 호의적인 대국으로 부상한다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주변국의 동조와 지지를 얻기 위해선 이웃나라의 민심을 얻어 주도권을 행사하는 시혜적 왕도정치’, 즉 주변국의 무임승차를 용인하고 지역공공재를 공급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21세기에도 중국이 조공체계와 화이사상을 근간으로 한 전통적 중화 세계질서를 주변국에 요구할 경우 이러한 시도는 전 세계적인 저항을 초래할 것이다.

 

중국의 질서 구축과 한국의 선택지

 

오늘날 전개되는 중국적 세계질서 구축담론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고유한 제국의 질서는 하늘 아래 모든 존재인 천하이자 중화체제이다. 천하로서의 중화체제는 유교문화 보편주의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조공-책봉관계를 실천적 규범으로 작동하는 제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국화 과정의 중국은 그만큼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국제사회를 향한 더 많은 국제공공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중국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주동자의 위치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경우는 첫째, 중국이 주변국들에게 중화주의적 조공체계를 강요하지 않고; 둘째, 일대일로 정책이 약탈적이지 않으면서 국제공공재로서 역할을 다하고; 셋째 중국이 주변국들과 함께 아시아적 가치를 만들어 지역운명공동체를 구축해갈 때 중국은 세계질서의 규칙제정자로서의 역할이 증가될 것이다.

중국은 가능한 미국과 직접 충돌을 회피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고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의 이러한 목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위축된 미국이 지역적 지배 국가인 중국을 동맹국으로 필요로 하게 될 정도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적으로 강력해진 중국을 자신의 동반자로 필요로 하게 될 정도로, 미국의 지역적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중국은 당분간은 미일 동맹에 맞서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방어적 팽창정책을 추구하거나, 미국 세력을 성급하게 일본세력으로 대체하지 않는 방식을 추구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미일 사이의 균열을 목표로 한국을 끌어들이는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다.(발문용)

물론 중국이 원하는 한중관계는 미중 간 패권경쟁 과정에서 한국이 중국에 편승하여 하나뿐인 내편이 되어 주길 바라지만 한국은 현실적인 국익 차원에서 그 대답을 줄 수 없는 처지이다. 중국은 여전히 중국적 세계질서 구축 과정에서 주변국 한국과 북한에 대한 은연중 편승을 강요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현상유지라는 차원에서 완충지대가 필요하고, 더 나아가 통일 한국이 미국 세력의 연장선이 아닐 경우에만 지지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 구조 하에서 더 많은 중국 관련 이슈에 대해 한국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중국은 언제라도 미중 간의 패권경쟁 구도 속에서 정치적 문제를 경제적 문제로 전환시켜 보복을 가하는 행태(China Bullying)’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한중관계가 당장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국익중심의 원칙을 견지하여 새로운 한중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성장은 미중 무역전쟁의 1차 합의결과와 최근 발생한 코로나19 전염병 사태에서 보듯이 소프트파워의 문제로 인해 패권국의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중국제국은 팽창과 확장은 가능하겠지만 시혜와 관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중국 중심의 천하체계(Pax Sinica)’ 형성 가능성은 팽창관용의 융합적 속성에서 볼 때 아직은 중국제국의 프로젝트화는 미완성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중화민족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부상은 인류역사의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제국의 탄생은 중화민족주의 해체를 통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역량이 구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제국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확장시키는 시혜적 패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그 제국의 생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중국제국은 순망치한적 인근을 궁핍화하는 제로섬(zero sum)적 제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같이 숨쉬고(同呼吸), 운명을 함께할(共運命) 수 있는 상생(相生)과 공생(共生)’을 이뤄내는 송무백열의 윈-(win-win)적 패권을 행사할 때 팍스 시니카는 용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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