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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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4-17 13:20:40
  • 분류 : 자유마당




위기 상황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태초부터 인간은 늘 위험에 직면하여 그 위험을 피하거나 완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지진이나 태풍, 기근, 전염병과 같은 자연 재해는 늘 인간의 생명을 위협했다. 우리는 이것을  전근대적 위험이라 부른다. 인간은 이러한 위험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위험의 원천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었다.
인류는 이러한 전근대적 위험에 오랫동안 대책 없이 노출되었지만, 인간의 지혜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그러한 위험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줄여왔다. 전근대 사회가 근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우리는 이러한 위험이나 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 수단과 방법을 강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재해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희생과 손실은 많이 줄었다. 기근은 대부분의 문명국에서는 거의 극복되었다. 전염병도 예외는 아니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치명적인 유행병은 완화되었다. 백신과 치료약의 발견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던 전염병을 극복하였다. 과거의 위험을 과학기술이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전근대적 위험을 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날 새로운 위험의 원인이 되었다. 1986년 구소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자로 폭발 사고는 새로운 위험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때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핵무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 사건이었다. 핵의 평화적 사용의 표상이 되었던 원자로가 재앙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은 과학기술의 산물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를 현실화시킨 사건이 되었다. 그 뒤에도 이런 위험은 계속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간의 관리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과학기술이 초래한 위험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환경 위기와 기후 변화가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최근에는 금융 위기와 같은 경제 위기와 테러리즘이 또 다른 위험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위험은 자연 재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위험과 구분된다. 울리 벡은 20세기 후반 인류는 만들어진 불확실성과 위험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말한다. 일단 이러한 위험이 발생하면, 그것이 미치는 범위가 광범위하고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 안에서나 국가 간에 보호구역이 존재할 수 없으며, 계층이나 계급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위험은 모든 형태의 차이와 경계를 넘어 모두에게 골고루 적용되는 전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글로벌하게 ‘위험의 평등화’가 일어난다. 여기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글로벌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는 인식은 국민국가의 논리로는 이러한 위험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의 다원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벡은 글로벌 위험은 경계와 대립을 넘어 세계적 시민의 책임 문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전 인류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상처받고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위험이 새로운 도덕적ㆍ정치적 공간, ‘코스모폴리탄 비전’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벡의 위험 사회론은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하나의 자연적 현상이라는 의미에서 전통적인 자연적 재해에 속한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잦아들 것이고,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될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자연적 재해로서의 전염병에 인류가 속수무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가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남이 병에 걸리지 말아야하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내가 병들지 말아야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최소하면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은 전염병이라는 1차적 현상에 못지않게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에 갇혀 자신과 남을 보호하려는 ‘비대면’ 현상 때문에 ‘사회의 일상성’이 전면적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삶의 현장인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활동 중단 현상이 초래하는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염병이 초래한 가장 심각한 현상은 경제 붕괴다. 증권시장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이것은 경제 붕괴의 전조다. 증권 시장에서 자금이 빠지면 약한 기업부터 흔들려 대기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소비 침체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만들어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연결될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는 독립성이 약한 우리 경제에 치명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몰고 온 실물경제의 탈진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공장이 문을 닫고 가게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공공기관과 시설이 문을 닫고 교문이 닫혔다. 가게 운영을 포기한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기업도 활력을 잃었다. 벌써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래한 경제 붕괴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다.
벡의 지적처럼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닥치지만, 위험에 대한 대처 능력에 있어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방문한다. 경제적 고통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재난기본소득’이 적절한 대책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본소득’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 지급이라는 5가지 기본 원칙을 갖고 있는데, 100만 원이나 50만 원을 1회적으로 상품권으로 지급하자는 것은 ‘기본소득’의 범주에 들어가기 어렵다. ‘재난기본소득’의 기본적인 취지가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겉으로는 ‘경제 활성화’라고 말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지급되는 ‘재난기본소득’이 얼마나 경제 활성화에 효율적일지 의문이다. 재원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위기 자체는 글로벌한 현상이지만 위험에 대한 대처는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국가가 나선다면 우선 약자의 고통에 집중하고, 국가가 경제 운영의 패러다임을 경제 활성화에 맞추어야 한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가 최선의 복지정책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실현해야 한다. 위기 상황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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