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와 '사회적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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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4-17 13:24:33
  • 분류 : 자유마당



초점

이제 ‘디지털 성범죄’와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은 어떨까요?

       남완우 / 전주대 산학협력단 교수


‘버닝썬게이트’는 디지털 성범죄의 전형

 2018년 11월 서울 강남에 위치한 ‘버닝썬’이라는 클럽에서 손님이 종업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수사는 뜻밖의 사회이슈를 만들어 냈다. 바로 남자 연예인들의 영상 불법촬영과 유포다. 경찰은 버닝썬을 운영했던 남자 연예인과 친분이 있었던 남자 연예인들이 SNS 단체방(단톡방)을 만들어 자신들이 찍은 불법촬영 영상을 공유하고 유포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리고 불법영상물에 나왔다고 세간에 지목된 여자 연예인들은 ‘자신은 영상 속의 주인공이 아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불법영상을 찍고 유포한 남자 연예인들은 현재 징역 6년~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아 수감돼 있고 해당 SNS 단체방에 가입했던 남자 연예인들은 활동을 중단했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이 바로 전형적인 디지털 성범죄 유형이다.


한 번의 클릭이 영원한 피해로

속칭 ‘몰카’라는 용어에는 범죄라는 인식보다 장난이라는 인식이 더 많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몰카’는 엄연한 범죄행위이며 몰카의 법률적 명칭은 ‘디지털 성범죄’다.
‘디지털 성범죄’란 카메라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하거나 이 불법 촬영물을 동의 없이 유포하는 행위다. 다시 말해 디지털 성범죄는 불법 촬영, 유포, 유포하겠다는 협박, 사이버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괴롭힘이고,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타인의 인격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그 피해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도 그 영상은 각종 인터넷 사이트, 커뮤니티, 웹하드 등에 남게 되고, 이러한 공간에서 전부 삭제가 되어도 개인이 USB나 외장하드 등에 보관하고 있을 수 있다. 인터넷의 속성상 최초 유포자, 재유포자, 정보 이용자가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렵고, 그 확산 속도와 범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넓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남아 있는 글, 사진, 동영상 등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 또는 ‘디지털 세탁소'라는 직업까지 생겨났지만, 일단 유포되면 전부 삭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들은 누군가 자신의 영상을 보고 알아볼까 두려워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성형과 개명을 하기도 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남녀를 가리지 않아

 여성 및 청소년 정책기관을 중심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정부는 2017년 9월 변형카메라 불법촬영 탐지·적발 강화, 불법촬영물 유통차단 및 유포자 강력 처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등을 발표했다. 2019년 1월에는 디지털 성범죄물이 유통되는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그해 2월에는 불법영상물 사이트를 차단시켰다. 보통 몰카 피해자는 여성, 가해자는 남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적지 않게 유포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는 2019년 1월부터 11월말까지 총 1936명의 피해자를 지원했는데 이중 남성이 241명으로 전체의 12.4%였다. 그리고 2019년 11월에는 서울시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실태 및 인식 조사’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43%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했고 직접 피해자도 14%나 되었다. 결국 디지털 성범죄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찾아라

 디지털 성범죄를 당했거나 목격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지 고민이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도 분명 범죄이기에 수사기관에 고소·고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의 은밀한 영상이 유포되었다는 충격과 자신의 신상이 유출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설사 용기를 내 수사기관을 방문해 피해 사실을 진술해도 ‘유포된 동영상은 어떻게 삭제할 것인가’하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정부는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원센터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와 관련된 통상적인 상담만 아니라 피해 영상 삭제지원, 사후 모니터링, 수사지원을 위한 체증자료 작성, 신고 및 조사 동행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피해 영상 삭제지원 등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으며, 재유포, 재재유포가 되어도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법촬영 영상물이 유포되는 것을 막고 빠른 시간 안에 삭제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정부가 영상 삭제 등 범죄 피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은 가해자에게 구상권 행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즉 피해 영상 삭제 등에 국가가 먼저 비용을 부담하고, 이후에 가해자에게 해당 금액을 구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성범죄를 당했을 경우에는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지원센터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 부담되거나 어려운 경우에는 전화상담이나 온라인 상담도 가능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자신이 당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손해배상은 법률 취지상 피해를 당한 만큼만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나마도 실질적인 피해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고의 또는 고의에 가까운 악의’로 피해를 입힌 경우, 그러한 행위를 두 번 다시 하지 못하도록 실제 발생한 손해 이상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즉 당사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경각심을 주는 본보기 배상이다. 실제 미국 뉴욕 주, 캘리포니아 주, 노스캐롤라니아 주 등에서는 불법촬영물 또는 동의를 받지 않고 영상을 유포한 사람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원은 사귀던 여성의 나체 영상을 유포한 남성에 대해 총 645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했고 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이다. 또 2016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법원도 불법 촬영물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불법영상물과 사회적 거리두기 필요
   
 2019년 1월 30일 불법촬영물 유포로 인해 자살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이름 없는 추모제’가 열렸지만, 그해 9월 병원 탈의실에 설치된 몰카에 찍힌 간호사 한명이 결혼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사회는 불법촬영 근절을 외치지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2019년 6월 제약회사 대표의 아들이 자기 집에서 몰카를 찍은 것이 적발된 사건과 관련해 해당 기사의 댓글에는 “돈 있는 집 아들이니 여자들이 쉽게 잤을 거다” “한국 여자들은 돈이 최고인가 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어떻게 몰카 가해자를 욕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느냐.”는 댓글에는 ‘좋아요’만큼 ‘싫어요’가 나왔다. 누군가 몰카로 피해를 봤다면 그것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며, 누구나 몰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난 3월 5일 디지털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지금도 각종 웹하드와 성인사이트에는 ㅇㅇ여대생, ㅇㅇ여친 등 이름으로 끊임없이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이번 기회에 불법촬영 영상과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만 더 기억하면 된다. 우리가 관음증과 호기심으로 불법촬영 영상물을 볼 때 누구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여동생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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