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독도에 대한 선전포고를 철회하라

  • No : 1906
  • 작성자 : 한국자유총연맹
  • 작성일 : 2018-03-07 16:21:48
  • 분류 : 자유마당

일본은 독도에 대한 선전포고를 철회하라

김중위 – 전 환경부장관


이웃을 침략 병탄한 일본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1869년 아이우 모시리(아이누의 나라)를 북해도로 개 명하면서 자기의 영토로 하였고 1872년에는 유구왕국 을 유구번(琉球藩)’이라 하면서 영토로 편입시켰다. 1875년에는 천도열도(千島列島)’를 집어 삼켰다. 1876 년에는 일본으로부터 1000km도 더 멀리 떨어져있는 오가사와라(小笠原島)를 자국영토로 삼았다.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는 1877년도의 정부 공포를 무시하고 1905128일 독도가 무주지라는 이유를 내세워 슬그머니 시네마현에 편입시켰다. 그해 1117일에는 대한제국 자체를 일본의 보호국으로 삼 았고(을사 늑약) 이어 1910829일 대한제국을 송 두리째 병합했다.

이 얘기는 내 말이 아니고 일본의 저명한 학자인 사 토오 쇼징(佐藤正人)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런 일본의 영토가 2차대전 중인 1945726 3대 연합국(··)의 포츠담선언으로 획정되 었다. “일본의 주권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구 슈(九州), 시코쿠(四國) 및 여기서 결정한 도서지역으로 한정한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의 형식을 통해 814 일 이를 수락했다. 다른 어떤 이의도 달지 않았다.

1946129일에 발표한 연합국 최고사령부 훈령 (scapin) 677호에서도 역시 독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 외되고 있었다. 훈령에서 일본지역은 다음과 같이 한 다고 하면서 제외된 지역으로 울릉도 제주도 독도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1890년 대통령령()1947년에 제정한 법률에 따 라 설치된 미국의 지명위원회(BGN : United States Board on Geographic Names)에서도 독도는 한국영 토로 돼 있었다.

미국사람들이 상용하는 공식명칭인 리앙크루 섬(Li-ancourt rocks :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의 포경 선의 이름에서 따옴)의 소속국(country code)을 확인해 보면 분명히 그것은 한국령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런 표기가 어느 시점 한때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territory belonging to no country)”으 로 표기된 적이 있었다. 일본의 끈질긴 로비 탓이라고 할 것이다. 20087월의 일이다. 그러나 곧 이어 부시 대통령(아들)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측은 이 문제를 양 국 정상 간의 의제로 삼도록 하였다. 그러자 부시 대통 령은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검토를 지시해 원상회복토 록 조치한 적이 있었다.

독도에 대한 일본측의 로비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에도 맹렬하였다. 당시는 한국이 6·25전쟁을 치르기에도 힘든 시절.

이런 사정을 이용해 일본은 치열한 로비를 통해 1951 810일 러스크 미 국무부 차관보로 하여금 독도 는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는 편지를 한국에 보내도록 공작을 펴기도 했다. 물론 이 편지는 의미 없는 것으로 끝났지만 결과적으로는 일 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한과 청구권을 포 기한다라는 내용으로 조약은 맺어졌다. 다시 말하면 독도가 한국령임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측에서는 독도는 당연히 울릉도의 속도(屬島) 이기 때문에 빠졌으려니 했으나 일본은 그렇게 생각하 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은 연합국 훈령 677호 와는 다른 내용의 것으로 발표됐기 때문에 자기들의 승 리로 간주하는 태도였다.

하여튼 일본이 독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마고사키 우케루(孫崎 享).

1) 한반도와 오키시마(隱岐島) 사이에 울릉도와 독도 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고지도가 많다.

2) 1618년 돗도리번의 상인들이 번주를 통해 막부에 서 울릉도(다케시마)에 도항 면허를 받았다.

3) 오타니와 무라카와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해바라 기 문양을 앞세워 울릉도에서 어로에 종사했고 채취한 전복을 쇼군가문에 바치면서 단독으로 섬 을 경영했다.

4) 에도시대 초기인 17세기 중반에 이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한 두 마디로 배척할 수 있다.

첫째, 고지도로 말하기로 하면 일본영토로 표시한 고 지도는 거의 없고 한국영토로 표시한 지도는 넘쳐난다. 일본이 자랑하는 하야시 시혜이(林子平)<삼국접양 지도(三國接壤地圖)1735>의 경우에도 울릉도(다케 시마)와 마쓰시마(독도)를 조선영토로 색칠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마도도 한국영토로 색칠해 있는 것을 우리 는 볼 수 있다(김상훈). 또한 1875년 일본육군성이 만든 <조선 전도>와 일본 해군성이 1886년에 편찬한 <조선 동해안지도>에도 독도는 한국령으로 돼 있다.

둘째로 1618년 일본이 조선정부 몰래 울릉도에 대 한 도해(渡海)면허를 일본인들오오타니(大谷甚吉)와 무라가와(村川市兵衛)에게 발부한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러한 도해면허는 1661년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1696 128, 일본 도쿠가와 막부 관백은 일본인의 도 해금지를 명령했다.

안용복의 활동으로 울릉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 번에 걸친 도해면허도 자연 취소되었다. 그리고 막부는 덧붙였다. “죽도를 조선으로부터 빼앗은 것은 아니니 돌려준다고 는 말할 수 없다.”

세 번째로 일본은 1905222일에 시마네(島根)현 고시로 독도를 일본에 강제 편입했다. 그러나 이 때도 당 시의 내무대신 후사가와 겐세이(芳川顯正)가 독도는 한 국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강력히 반대했다는 사실 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이즈미 마사히코(泉 昌彦)그 뒤 1924년에 발간한 일본 중등학교 교과서에는 분명히 독도가 조선땅이라 명기되어 있었다.(김문길)

이처럼 어느 역사 어느 자료를 보아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못박은 흔적은 없다. 분명히 말하건대 일본 은 독도에 관해 말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은 일본 학자들이 먼저 안다. 오직 일본 외무성과 정부만 딴소 리를 한다.

일본에 극우파 출신의 수상이 취임하면서부터 평화 헌법을 폐기하고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모조리 왜 곡하려고 대든다. 특히 초등학교 학생에게까지 독도 는 일본 땅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가르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동경 한 복판에 독도 전시 관까지 만들어 독도가 자기네 것인양 선전하고 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언제인가는 일본이 반드시 되 찾아 와야 할 영토라고 자국민을 넘어 세계사람들에 게까지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어느 시점 에 있을 선전포고를 미리 예비 저장하고 있음을 의미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일본은 독도에 대한 이러한 예비된 선전포고를 즉각 철회하여 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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