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l they are home

  • No : 2278
  • 작성자 : 한국자유총연맹
  • 작성일 : 2018-11-06 17:14:36
  • 분류 : 자유마당

‘Until they are home’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전인범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전 육군 특전사령관)




2018년 10월 1일 제70주년 국군의 날은 64위(位)의 6·25전사자 유해가 미국으로부터 송환되는 날이어서 그 의미가 더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서울공항에 나가 64위의 6·25전사자 유해를 영접하며 호국영령들에 대한 예를 다했다.


우리 공군은 F-15K 편대와 FA-50 편대를 출격시켜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우리 영공에 진입할 때부터 공항까지 호위했다. 국민과 국군장병 모두에게 감동이고 가슴 뭉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돌아온 유해들은 북한지역에서 미국이 1996∼2005년 사이에 함경남도 장진과 평안남도 개천 지역에서 북한과 공동 유해발굴 작업을 벌여 발굴한 약 400여 구의 유해 가운데 일부이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 부터 12월 11일까지 미 해병 1사단과 미 육군이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반복하면서 부대원의 절반을 잃을 정도로 처절했던 전투이다. 그리고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혹독한 추위와 급박한 전장 환경 때문에 그대로 두고 올 정도로 미군으로서는 불명예를 남긴 전투이기도 하다.


6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64위
빠른 신원확인으로 가족에 돌려드려야
공동 유해발굴 작업을 통한 400여 구의 유해와 유품은 하와이의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 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으로 이송됐다. DPAA는 미 태평양사령부 산하에 설치된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가 확대되어 국방부 산하조직으로 됐다.


DPAA에서는 2008년부터 유전자(DNA) 감식 등 유해의 신원 확인 작업을 통해 400여 구 가운데 70여 구가 동양계임을 확인했다. DPAA는 동양계 유해가 확인될 때마다 관련 내용을 한국의 유해발굴감식단에 알려왔고 그 결과 유해 64위를 국군용사로 잠정 결론내린 뒤 우리 감식팀을 DPAA로 보내 합동 감식을 벌여왔다. 그리고 지난달 9월 초에 이를 최종 확인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미 두 나라의 노력으로 64위의 유해가 6·25전쟁이 끝난 지 6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우리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들의 유전자를 일일이 조사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을 찾아주는 쉽지 않은 일이 남아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6·25전쟁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유전자 등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는 유족의 시료가 20% 정도만 확보되어 있는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유족들을 비롯한 전 국민적 관심과 협조 그리고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이참에 우리가 생각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것이 또 하나 있다. 약 5~7만 명으로 추정되는 국군포로 문제이다. 6·25전쟁 종전 이후 북한은 아군 포로를 하나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증언에 의하면 이들은 강제노역과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대부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들이 6·25전쟁 당시 죽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지 않고 적에게 항복했다거나 아니면 적군에게 붙잡혔기 때문에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도 되는 것일까?


북에 생존하는 국군포로 잊지말아야
국군포로 송환은 남북간 신뢰구축에도 도움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기억하고 역사에 기록해 놓아야 한다. 그들이 혹시라도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대부분 90세 전후의 고령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단 하루라도 빨리 고향 땅을 밟아 볼수 있도록 북한 당국과 협의해야 마땅하다.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종전선언을 고려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의제라고 본다.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있어서 포로에 대한 처리문제는 당연한 의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적과 싸우다가 희생된 것만도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죽어서 시신이나 유해마저 수습하지 못한다면 후손된 자로서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미 DPAA의 전신인 JPAC의 모토는 ‘그들이 (모두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이다. 우리도 위의 모토를 거울삼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자.


1953년 정전협정이 맺어질 때 유엔군사령부가 추정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는 8만2000여 명이었다. 이 가운데 남한으로 송환된 포로는 8343명뿐이었고 나머지 7만3000여 명은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북한에 잔류 되어졌다.


이들 중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는 80명 정도이고, 아직도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가 560여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이 완전히 눈을 감기 전에 생존한 국군포로는 한시바삐, 그리고 사망자들의 유해는 가족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은 우리 민족의 인간적인 정서에 미치는 유대감과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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